할리우드 시상식에서 애니메이션의 자리 제1편 - 애니상
미국 연예계는 자화자찬을 즐긴다. 사람들은 멋지게 차려 입고 대형 컨벤션홀에 모여, 카메라 앞에서 미소를 짓는다. 한때 세간의 관심을 받는 시상식은 영화의 아카데미상, TV의 에미상, 음악의 그래미상 정도였다. 요즘은 케이블 채널이 처치 곤란할 정도로 많은 덕에 미국 연예계의 자화자찬 시상식은 우후죽순처럼 늘어났다. 관객이 뽑은 상, 비평가가 뽑은 상, 골든 글로브상, MTV 음악상, MTV 영화상, 토니상, 컨트리 뮤직상, 영화배우 협회상, 스파이크 TV 비디오 게임상, 미 프로듀서 협회상, 미 감독 협회상, 블록버스터 영화상 등 셀 수 없이 많다. 이런 시상식 프로그램을 너무 많이 보다 보면 이성을 잃어버린 나머지 연예인들이 마치 대통령, 국왕, 황제와 같은 수준의 진짜로 중요한 인물인 양 착각하기 시작한다.
필자가 너무 비판적으로 나가는 것 같은데 애니메이션계에서도 1년에 한 번 '애니상'을 통해 얌전하게 자화자찬을 한다는 점을 먼저 인정해야겠다.
국제 애니메이션 필름 협회(ASIFA: www.asifa-hollfwood.org)에서 주관하는 애니상은 애니메이션 분야의 뛰어난 업적을 기리기 위해 회원들이 1년에 한 번씩 모여 실시하는 비밀 투표를 통해 시상된다. 연예계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큰 영향을 끼치며, 할리우드를 이끄는 애니메이션계의 명성에 걸맞는 시상식을 갖고자 매년 캘리포니아 주 글렌데일의 멋들어진 알렉스 극장에 모이는 것이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동료들도 만날 수 있고 요즘은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옛 친구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알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장차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들과 연줄을 만들 수 있는 기회이다. 이렇게 사교적이고도 즐거운 자리인 반면 성실한 우리 애니메이션인들은 거대한 연예인 가족의 잊혀진 의붓 자식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씁쓸한 자리이기도 하다. 애니상 시상식이 TV에 방영된 적은 한 번도 없으며 지역 신문이나 TV방송국에서도 아주 간략하게 다뤄진다.
아카데미상이나 에미상에 비하면 애니상은 우스울 정도로 일반 대중에게 인지도가 낮다. 영화 예술에 끼친 애니메이션의 공헌도는 보다 매혹적인 사람들을 둘러싼 화려한 언론 쇼에 가리기 일쑤다. 스파이크 TV 비디오 게임상이라는 다소 생소한 상의 시상식조차 스툽 도그 같은 슈퍼스타 랩 가수를 초청해 공연을 하는데 반해 애니상 시상식에는 「킹 오브 더 힐」에서 루앤 역을 맡은 B급 배우 브리터니 머피가 'TV 애니메이션 제작 최고 성우상'을 받으러 나타나지도 않았다. 필자는 매년 애니상 시상식에 참석하면서 애니메이션을 그토록 사랑하는 나라가 어째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무관심할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애니메이션인들이 그렇게 재미없는 사람들이란 말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필자가 일했던 모든 애니메이션 제작 업체에서는 학생들과 학부모 단체들, 애니메이션 학생과 투자자들을 초청해서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을 견학시키곤 했으며 견학에 참가한 사람들은 모두 매료된 것처럼 보였던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견학에 참가한 사람들은 가이드가 대답할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질문을하면서 관심을 보였다.
올해 애니상 시상식 사회자는 인기절정의 「네모네모 스폰지밥」역을 맡은 성우 톰 케니였다. 톰 케니는 아카데미 시상식의 단골 사회자 빌리 크리스탈 못지 않게 재미있는 진행을 보여주었다. 디즈니의 「NIHM의 비밀」「공룡 시대」(The Land Before Time)「피블의 모험」(An American Tale) 등과 같은 작품의 애니메이터이자 제작자였던 돈 블루스는 평생 공로상을 수상했다. 수상 소감에서 그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사에서 일하게 될 것을 꿈꾸며 농가에서 자라나던 어린 시절과 사춘기 때 디즈니사 체육관 라커룸에서 월트 디즈니를 직접 만났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려주었다. 「스파이더 맨」을 비롯한 수많은 만화책 주인공들의 공동 창작자인 스탠 리 역시 시상자의 한 사람으로 참석했다. 스탠 리는 자연스럽게 풍겨 나오는 매력과 쇼맨십으로 청중들을 즐겁게 했다.
이렇게 즐거운 행사를 TV에서 보고 싶어하는 미국인이 나 말고는 없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애니메이션이 할리우드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애니메이션계는 스스로를 위해 지나치게 겸손하기 때문에 애니메이터들을 위한 시상식이 언론 매체의 레이더에 걸리지 않는다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우리의 수상 소감에는 아카데미와 에미 수상 소감에서와 같은 자만심과 과장된 겸손을 찾아볼 수 없다. 대체적으로 우리는 미국 문화의 형성자임을 자처하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우리는 애니메이션 필름 제작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우리의 기술을 적용하는 예술가에 불과하다. 할리우드에서 애니메이션의 입지를 정당화하기 위해 애니상 시상식을 전국에 TV 방영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반 영화나 TV와는 달리 애니메이션과 애니메이션 업계는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이 시급하며 이는 언론의 조명을 통해 가능하다. 올해는 그 어떤 해보다 애니상 시상식을 미국 전역에 방송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몇 년 전 애니메이션 감독 브래드 버드와 그가 이끄는 팀은 「아이언 자이언트」라는 뛰어난 작품으로 애니상의 장편 부문을 거의 전부 쉽쓸었다. 이 작품은 관객들의 눈길은 거의 끌지 못했지만 비평가들로부터는 영화 제작의 절대적인 개가라는 찬사를 받았다. 「아이언 자이언트」를 보고 마음에 들어 했던 사람들은 모두 버드 감독의 차기작을 기대했다. 올해 그는 픽사에서 제작한 히트작 「인크레더블」로 우리 모두의 기대를 충족시켰다. 버드와 그가 이끄는 팀은 드림웍스의 「슈렉2」「샤크」「이노센스」 그리고 디즈니의 「홈 온더 레인지」와 같은 경쟁작을 제치고 장편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비롯하여 다시 한번 애니상의 모든 부문을 휩쓸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버드는 장편 각본상뿐만 아니라 '에드나 모데'라는 웃긴 조연 역의 목소리 연기로 최고 성우상까지 거머쥐었다. 이 날 시상식에서 그는 연예계에게 우리 애니메이터들을 그들의 일부로 알아달라고 호소했다. 우리들도 그들과 같은 배우요, 감독이요, 작가라는 점을 일깨웠으며, 대중 문화 레이더의 영상 하나에 불과한 것이 아닌 영화의 한 매체로서 우리들이 얼마나 지대한 공헌을 하는지 알아준다면 더욱 더 큰 보답을 얻게 될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인크레더블」이 골든 글로브 작품상을 비롯한 다른 주요 상 후보 지명이 되기는 했지만 아직 특정 애니메이션 부문 이외의 상을 획득하지는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인크레더블」을 아카데미 작품상의 유력한 후보로 지목했지만 아쉽게도 「슈렉2」「샤크」와 함께 '장편 애니메이션 작품상' 부문으로 밀려났다. 아카데미상 이야기는 다음 달에 본 코너를 통해 진행할 예정이다. 상과 트로피는 연예계 전체로 볼 때 새발의 피에 불과하지만 애니메이션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반 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애니메이션도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서 필요한 광범위한 인정을 받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주눅이 들 정보로 거대한 언론 앞에 "이봐요! 우리도 좀 봐 줘요! 우리도 여기 있다고요~!"라고 애니메니터들이 절박하게 외칠 수 있을 만한 최상의 방법은 애니상뿐이다.
[뉴타입 2005년 3월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