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시각으로 지난 4월 9일 수요일 밤, 오스카 상 시상 단체인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에서는 애니메이션계의 전설과도 같은 존재인 프랭크 토마스와 올리 존스톤을 위한 감사의 행사를 마련했다. 프랭크와 올리는 제대로 소개하려면 여러 페이지를 할애해도 모자랄 정도로 많은 업적을 애니메이션에 남긴 사람이다. 이 두사람이 누구인지 잘 모르는 독자 분들을 위해 최대한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1930년대에 디즈니 사는 월트 디즈니씨가 아흡 늙은이라는 별명을 붙인 최고의 전설적인 애니메이터를 9명 거느리고 있었는데 프랭크 와 올리는 바로 이들 중 두 명이다. 지금은 고전이 된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 「피노키오」,「밤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피터팬」을 비롯한 기타 장편 만화 영화와 셀 수없이 많은 단편 만화영화, 특작 단편, TV용 프로그램 등을 제작하고 발전시켜 애니메이션이라는 예술 장르를 구축했다. 그 뿐만 아니라 1981년에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생의 환상」(애버빌 출판사 간행)라는 책까지 공동으로 집필했다. 이 책은 전 세계의 애니메이터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애니메이터의 교과서처럼 널리 읽혀지고 있다.
이들이 끼친 영향은 수작업한 것이든 컴퓨터 그래픽이든 오늘날 모든 애니메이션 구석구석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느낄 수 있다. 애니메이션이라는 새로운 예술 장르를 자신들 손으로 일구어 낸 훌륭한 애니메이터 팀원 중 아직까지 살아 있는 이들은 글자 그대로 살아 있는 전설이다. 아카데미의 감사 행사에는 애니메이션계의 내로라하는 명사들이 모두 모였다. 제퍼리 카츤버그(드림웍스의 공동 창립자이자 「스피릿」의 제작자), 글렌 킨(「미녀와 야수」, 「타잔」외에 수많은 디즈니 장편 만화의 수석 애니메이터), 존 래스터(「토이 스토리」와 「벅스 라이프)의 감독), 브래드 버드(「아이언 자이언트」의 감독), 그리고 영화 평론가 레너드 말틴(「미국 애니메이션의 역사」의 저자)이 패널과 연사로 참가했다.
강당은 이미 꽉 차서 좌석은 남아 있지 않았는데도 밖에는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단순한 만화광이 아니다. 프랭크와 올리라는 두 거장이 들려준 이야기를 사랑하며 이들의 빼어난 업적에 감동을 받은사람들이다. 애니메이션은 프랭크와 올리가 뛰어든 1930년대 후반에 시작된 새로운 영화 매체라는 점과 이들이 그 동안 예술적 확신을 발전시켜 나간 모습을 살펴보면 이들의 혁신적인 천재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프랭크와 올리에게는 지금처럼 교훈 거리로 삼을 수 있는 수십 년에 걸친 애니메이션의 역사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애니메이션 학교도 없었다. 1930년대의 미국은 경제적으로도 불확실한 시대여서 애니메이터로 밥을 먹고산다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따라서,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보다는 그저 맡은 일만 했다고 하더라도 아무도 비난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그들은 애니메이션이 용기를 갖고 대담하게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는 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 자신의 기술을 갈고 닦았을 뿐만 아니라 책을 통해 그들의 지식과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수했다.
행사의 4분의 3은 프랭크와 올리의 작품들 일부를 상영하고 그 작품들에 의해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데 할애되었다. 황홀경에 빠져 지켜보던 나는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화장실에 가고 싶은 것도 꾹 참았다. 그러나 참다 못해 결국 자리를 빠져 나와 급히 화장실로 달려갔다. 남자 화장실 앞에는 두 대의 휠체어가 가로막고 있어서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이러다가 프랭크와 올리의 연설을 놓치게 될까봐 걱정되기 시작했다. 결국 휠체어 수행원 중 한 명이 정중하게 길을 비켜주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휠체어의 주인공이 바로 프랭크와 올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너무 놀라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들을 누구보다도 열렬히 존경하고 있다는 것과 그들의 작품이 내 어린 시절부터 얼마나 큰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말하고 싶었는데 할 말이 갑자기 떠오르지 않았다. 더구나 하필이면 화장실이라니!! 화장실에서는 그저 점잖게 볼일을 보는 것이 최선이 아닐지. 그래서 나는 올리에게 미소를지으며 '실례합니다'라고 말하고는 볼일을 보러 갔다. 갑자기 벌어진 일에 멍한 상태로 볼일을 보고 나오면서 나는 슬퍼졌다. 두 사람의 모습이 모두 너무 늙어보였기 때문이다. 솔직히 두 분다 늙긴 했다. 올해 90세시니 말이다. 하지만 아주 생동감 넘치는 작품으로 늘 유명하던 분들이다. 프랭크와 올리는 학생들에게 작화 요령을 가르쳐주거나 그림을 그려 보여 주는 것 뿐 아니라, 직접 일어서서 자세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캐릭터의 연기를 온몸으로 보여 주는 열정적인 분들이었다. 그런 두 분이 힘없이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는 모습은 나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다.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내 자리에 돌아왔다. 오늘은 프랭크와 올리의 입에서 어떤 지혜의 말도 들을 수 없을 것이라는생각이 들었다. 피곤에 지쳐 보이던 프랭크와 올리의 모습으로 미루미 볼 때 아마도 행사를 겨우 끝내고 박수 갈채를 받은 후 휠체어에 실려 집에 가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더 이상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결국 프랭크와 올리에게 직접 감사를 표하는 순서가 되었다. 그들이 휠체어를 타고 무대에 등장하자 박수가 터져나왔고 너나할 것 없이 일어서서 오랫동안 열렬한 환호성을 보냈다. 그럴수록 내 마음속에는 프랭크와 올리에 대한 측은한 마음이 더 커져갔다.
박수 소리가 겨우 잦아들고 레너드 말틴이 오늘의 주인공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할 때야 비로소 나는 얼마나 바보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비록 휠체어 신세이긴 했지만 이 점잖은 두 노인에게는 마치 피터 팬이 들어 앉은 것 같았다. 평생동안 자신들이 그려왔던 캐릭터처럼 활기차고, 명료하고, 기쁨에 찬 생동감 있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월트 디즈니에서 보냈던 시간과 대학 시절부터 계속된 서로의 우정에 대해, 동료 애니메이터들과는 물론 둘이서 벌였던 선의의 경쟁이 끊임없는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음을 이야기했다. 조언자가 되어준 선배들에 대해 이야기했고, 배우려는 의욕이 앞서는 젊은 애니메이터로서 맛본 좌절감에 대해 이야기했다. 음악, 미술 그리고 모형 기차에 갖고 있는 애정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미래에 대한 희망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들만의 웹사이트(www.FrankanOllie.com)까지 소개해주었다!
이들은 퀘퀘묵은 늙은이들이 아니었다. 여전히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면서 그 한순간 한순간을 즐기고 있는 젊음으로 넘치고 창조적인 아이디어로 번득이는 천재들이었다. 인터뷰가 끝나자, 다시 한 번 터져나온 기립 박수와 환호성을 받으며 프랭크와 올리는 강당을 떠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는 원숙한 지혜의 말을 듣고 예술적 비전의 결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행운에 대해 감사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들의 우정과 일에 대한 애정은 프랭크와 올리가 젊음과 생동감 넘치는 삶을 유지해 올 수 있었던 비결이다. 이것은 우리들을 더욱 훌륭한 예술가뿐만 아니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철학이다.
[뉴타입 2003년 6월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