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 샌들러는 「웨딩 싱어」, 「첫 키스만 50번째」등의 영화로 헐리우드 최고의 코미디 배우 중 한 명으로 평가 받고 있지만, 그의 명절용 코미디 애니메이션 「8 크레이지 나이트」(Eight Crazy Nights)는 비참한 실패작이었고, 1940년대 제작된 10분짜리 「벅스 버니」 애니메이션과 비교하면 어느 에피소드와 비교해도 상대가 되지 못한다. 한마디로 벅스가 더 웃기다. 「루니 툰」 아티스트들은 샌들러처럼 코미디 연기 학교에 다닌 것도 아니고, 대부분 건축가, 잡지사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한 경력이 있을 뿐이다. 그냥 남들보다 그림을 잘 그릴 줄 아는 정도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어째서 이들은 샌들러와 같은 훈련 받은 코미디 작가/연기자도 성공적인 애니메이션 영화 대본을 써내지 못하는 마당에 코미디 명작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일까? 이 미스터리를 푸는 열쇠는 바로 대사에 있다고 본다.
실사 영화나 TV 대본 작가는 이야기 전개 시 대사에 크게 의존한다. 등장 인물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시청자들에게 보여 주는 대신 직접 말을 한다. 따라서 말을 빼버리면 아무런 재미가 없다. 반면, 초기 디즈니 또는 루니 툰 애니메이션은 소리를 끄고 보더라도 여전히 무척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요즘은 벅스 버니가 여자 옷을 입고 엘머 퍼드를 속이려고 하는 것 같은 신체적이고 시각적인 개그 대신 「슈렉」의 당나귀처럼 쉴새 없이 지껄이면서 대사 속에 유머를 섞는 농담 따먹기에 보다 많이 주력하고 있다. 이처럼 말에 크게 의존하게 되면 언어 장벽이 있는 잠재 관객층이 즉각적으로 떨어져 나가는 문제가 생긴다.
「로드 러너」 애니메이션에서 코요테 머리에 쇳덩이를 떨어뜨리는 것은 미국에서나 일본, 한국, 러시아, 아프리카, 그 밖에 세계 어느 지역에서도 똑같이 웃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제아무리 훌륭한 번역가가 번역을 한다 하더라도 바트 심슨의 "Don't Have a Cow, Man!"을 번역하면 뉘앙스가 100% 전달되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이 표현은 독특하면서도 의도된 미국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의 재미가 이처럼 재치 넘치는 대사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면 그런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관객층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한때 아티스트와 애니메이터들의 독점 영역에 작가들이 침범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이 현상은 애니메이션 창시의 주역들이 죽거나 은퇴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시작되었다.
영화사들과 애니메이션 제작업체들의 경영진들은 지금보다 규모가 훨씬 작았었다. 그러나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거대해짐에 따라 걸린 돈의 액수도 커지고 경영진들도 더 많이 영입되었다. 영화/애니메이션 산업을 건설했던 이상가들이 사라지자, 그 자리는 기업인, 회계사, 변호사 등 예술과 무관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문제는 대부분의 기업인들은 영화 제작 기술의 기초를 모르고 애니메이션을 보는 사람의 수도 적다는 점이었다.
다른 모든 예술과 마찬가지로 영화는 그만의 언어이며 애니메이션은 독특한 방언이다. 하지만 경영진들이 도통 이해하지 못한 것은 이 언어였다. 하지만 그들은 읽을 줄은 안다. 결국 경영진으로부터 필요한 제작 경비 결재를 얻기 위해 애니메이션 제작업체는 대본에 점점 더 많이 의존하여 애니메이션 내용을 설명하게 되었다.
문제는 애니메이션 대본은 작성된 적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작성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점이다. 애니메이션 작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실사 영화와 TV, 만화책, 광고 등 다른 매체로부터 작가를 채용했지만 작가들 자신조차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 결과, 애니메이션은 모든 사람이 이해하는 농담 따먹기 범벅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쇳덩이가 대피 덕의 머리에 떨어진다…'하고 씌어 있는 걸 보면 별로 웃기지 않은 법이다. 시각적 개그는 직접 봐야 이해가 간다.
이러한 변화 때문에 미국 애니메이션은 암흑 시대를 겪었지만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의 개봉을 계기로 관객들은 전성 시대에 애니메이션이 어땠는지 다시금 떠올리게 되었다. 이 와중에 등장한 것이 고전적인 시각적 이야기 전달 수법을 사용한 근 몇 년 중 최초의 작품인 「렌과 스팀피」이다. 「렌과 스팀피」는 모든 연령층의 어린이들은 물론 고교생과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인기를 얻었으며 다양한 문화를 아우르는 데 성공함으로써 「덱스터의 실험실」, 「파워 퍼프 걸」과 같은 아티스트 주도 애니메이션의 새 세대를 여는 초석이 되었고 미국 제 2의 애니메이션 르네상스를 맞이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애니메이션은 또 다시 많은 관객을 끌어 들였고 헐리우드 영화사들 역시 또 다시 예전 방식으로 돌아갔다. 즉 걸린 돈 액수가 늘어나 위험 부담을 줄이려고 하니 또 다시 작가에게 크게 의존하게 되는 식이다.
예전의 애니메이터들은 무성 영화와 희극 연극 무대의 영향을 받은 세대임에 반해 신세대 애니메이터들은 주로 다른 애니메이션의 영향만 받고 자라났다. 이들 새 애니메이터들 중 다수는 이야기 전개에는 치중하지 않고 애니메이션 기술만을 가르치는 학교에 다녔다. 이야기 전달자로서의 애니메이터가 가진 풍부하고 연극적인 유산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애니메이션 수요는 높았기 때문에 업체에서는 아티스트와 작가 군단을 채용하였고 일부 작품은 아티스트 주도, 다른 작품은 작가 주도로 나뉘게 되었다. 그러나 방향성 부재로 인하여 공급 과잉이 야기되었고 조잡한 그림의 연속에 불과한 애니메이션, 또는 말하는 머리통들의 연속에 불과한 애니메이션이 양산되었다. 그 결과로 쏟아진 형편없는 애니메이션들은 당연히 관객들로부터 즉각적인 외면을 당했고 직원들이 모두 해고당하고 애니메이션 부서가 문을 닫기 시작하는 이른바 애니메이션 몰락사태가 5년 전에 발생한 것이다.
현재 애니메이션계에는 다시 한 번 개혁의 바람이 불고 있다. 아티스트라고 해서 다 작가는 아니므로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뿐만 아니라, 작가라고 해서 모두 애니메이션만의 독특한 요구에 부합하지는 않는다는 사실도 배웠다. 절충안은 물론 간단하다. 글쓰기와 그리기에 모두 소질 있는 보기 드문 인재를 찾아 제작을 맡기면 된다. 가장 최근의 성공 사례는 「사무라이 잭」의 젠디 타토브스키와 「인크레더블」의 브래드 버드이다. 이들은 모두 작가, 디자이너, 감독, 애니메이터, 스토리보드 아티스트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활약했으며 애니메이션을 사용해서 호소력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필요한 미묘하면서도 복잡한 면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물론 여기서의 난제는 작가와 애니메이터 능력을 모두 갖춘 사람이 참으로 드물다는 점인데 그렇다면 영화의 엄청난 수요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이 문제의 답도 간단하다. 감당하지 않으면 된다!
애니메이션이 미술/엔터테인먼트 분야 내에서 성장하려면 이익이 적거나 없고 관객들을 소외시키는 평범한 작품을 천 개 만드는 것보다 영속적인 가치를 지녀 큰 이익을 내는 작품 한 개를 만드는 편이 낫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연극계의 오랜 격언이 가르치듯 '관객들로 하여금 더 많은 것을 원하게 하라'는 것이다.
[뉴타입 2004년 12월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