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코믹콘」은 더 이상 괴짜들의 축제가 아니다.
명실공히 미디어 엔터테인먼트의 중심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순수한 환상을 꿈꾼다.
미국의 '여름'을 생각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테마 파크에서 휴가를 보내거나 해변에 가거나 뒷마당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며 쉬는 것을 떠올린다. 그러나 필자가 이러한 판에 박힌 시간 보내기보다 휠씬 더 기대하는 것은 바로 「샌디에이고 코믹콘 인터내셔널(ComiCon International: 미국 샌디에이고 컨벤션에서 매년 열리는 행사로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캐릭터, 영화 등 만화 콘텐츠 유관 산업의 제작사, 에이전시 등이 참가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만화 콘텐츠 전시회)」이다!
캘리포니아 주의 아름다운 샌디에이고(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과 야경, 관광지가 있는 곳)에서 열리는 「코믹콘」은 괴짜들이 꿈꾸는 최고의 휴가지다.
코믹 북, 카툰, 영화, 장난감, 게임과 파티가 5일 내내 이어진다. 너드(Nerd: 사전적 의미로는 공부, 취미 따위나 파고드는 따분하고 비사교적인 사람으로, 보통 남성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 오타쿠가 있다면, 미국에는 너드가 있다고 할 수 있다)임을 자부하는 우리들에게는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이자 슈퍼볼 못지않은 애국적 허장성세로 모든 멍청함을 기리는 행사다. 작년에 8만7천여 명에 달했던 「코믹콘」의 참가자 수가 올해 9만 명을 너끈히 돌파했다고 해도 전혀 놀랄일이 아니다.
해마다 기하급수적으로 참가자가 늘어나는 통에 주최측은 이제 행사장을 좀더 큰 컨벤션 센터로 옮길 것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지경이다. 2만 명이 '프리뷰' 데이에 참가했다고 들었다. 프리뷰 데이는 원래 코믹 북과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전문가들을 위해 마련된 날이다. 이들에게 일반 관람자들에 앞서 부스를 먼저 둘러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입장권을 받는 데만도 1시간이나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그들 2만 명이 프로였든지, 일반인이었든지 간에 코믹 북을 사러 가기 위해 모두 직장에 휴가를 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다.
「코믹콘」이 성장하고 있는 배경에는 부적응자, 성별 구분이 없는 사회 부적격자라는 고정관념이 있는 미국에서 괴짜 수가 크게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자리한다. 따라서 컨벤션 홀에는 떼거지로 몰려다니는 화목한 너드 가족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제국의 역습」에 나온 루크 스카이워커처럼 차려 입은 한 아버지가 등에 업은 요다처럼 보이도록 애교 있게 꾸민 갓난아기를 데리고 있는 것을 봤다. 그들은 모두 「코믹콘」으로 향하고 있는 듯했다.
「코믹콘」은 사실상 일개 코믹 북 컨벤션에서 명실상부한 미국 최고의 미디어 행사로 발전했다. 「코믹콘」은 이제 더 이상 너드들을 위한 행사가 아니다. 사인회 등으로 자리를 빛내기 시작한 유명 인사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그들은 관람객이나 참가자의 자격으로도 많이 오고 있다. 따라서 창작자와 일반 팬들간의 구별이 모호해지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참가자들은 좋아하는 배우, 아티스트, 작가들과 접촉할 수 있게 되었다.
코믹 북 독자들이 카툰도 많이 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코믹콘」에 깊이 뿌리내린 주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는 TV 쇼부터 장편 영화에 이르기까지 현재 진행 중이거나 계획 중인 애니메이션 프로젝트 홍보의 장으로 이 행사를 활용하기도 한다.
올해 최대의 화두는 'E-Vill Press'라는 코믹 북 출판 그룹을 창설한 픽사의 아티스트 그룹이었다. 코믹 북 중에는 스케치북을 모은 것에 불과한 것도 많은 반면, 할리우드 개발 담당 임원의 눈을 끌기 위한 '피치 바이블'의 성격을 띤 것도 있다.
지난 수년 동안 데스크탑 출판이 발전함에 따라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간편하게 자신만의 코믹 북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코믹콘」의 '아티스트네 골목'은 바로 이러한 코믹 북만 여러 줄에 걸쳐 전시되어 있는곳이다. 애니메이션 소프트웨어 역시 대변신의 단계에 있다. 캠코더와 가정용 컴퓨터로 개인이 제작한 애니메이션 및 실사 영화를 DVD로 판매하는 부스가 많아진 것. 이들 중에는 대형 업체가 대규모 예산을 들인 영화 뺨치는 애니메이션과 특수 효과를 선보이는 영화도 있다. '프로'와 '아마추어' 사이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는 가운데 「코믹콘」은 캐릭터와 스토리에 대한 개인 저작권 보호 강연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팬 픽션 창작은 단순히 좋아하는 캐릭터에 대해 온라인에서 글을 쓰는 것 이상으로 발전했다. 이제 '팬 영화'는 그 자체로 비영리적인 새로운 유행이 되었다. 「스타워즈」 「배트맨」 「툼 레이더」 비디오 게임 시리즈의 라라 크로프트를 비롯해 팬 영화 제작자가 만든 프랜차이즈도 많다. 이러한 영화를 영리를 목적으로 판매하거나 상영하면 미국 저작권법을 위반하게 되므로 「코믹콘」은 이러한 영화를 교환하거나 원가로 판매할 수 있는 장소로 자리 잡았다.
파라마운트 픽처스는 올해 「코믹콘」에서 「트랜스포머(Transformers)」 실사/CGl 장편 영화 맛보기를 제공했다. 로봇으로 변신하는 자동차와 휠 캡에 장식되고 검은 방수포에 싸여 있는 거대한 붉은 트레일러(트랜스포머 팬에게는 설명이 필요 없을 바로 '그'다)의 오토보츠 마크를 보여주는 빠른 테스트 애니메이션을 보여주었다.
해적판 DVD는 「코믹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어렸을 때 즐겨 보았던 모든 TV 쇼는 물론, 미국에서 방영된 적이 없는 일본이나 한국 TV 쇼까지 이제 해적판 DVD로 구할 수 있다.
지금쯤 알아챘겠지만, 「샌디에이고 코믹콘 인터내셔널」을 '코믹 북 컨벤션'이라는 말로 설명하기에는 매우 미흡한 감이 있다. '괴짜문화'라는 낙인이 이제 거의 사라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공상 과학(SF), 판타지, 슈퍼 히어로의 유사 장르가 최근 대중 엔터테인먼트의 주류로 빠르게 편입되고 있다. 엔터테인먼트계에서 직면하고 있는 유일한 위험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있다. 너드들은 이제 미국인의 삶 모든 부분에 스며들었을 뿐만 아니라, 신세대 너드들을 탄생시켰다. 이들은 기존 너드들을 대신하는 대신 새롭게 그려진 세상에 과감하게 참여한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이런 세상에서 실제로 성장하며 현대인의 삶에서 벗어난다는 순수한 환상의 욕망을 간직하고 있다. 그것이 비록 해변에 한 번도 가지 않고 샌디에이고에서 1년에 5일을 보내는 것일지라도 말이다.
[뉴타입 2005년 9월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