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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2005.03.29 09:19

우리 좀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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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시상식에서 애니메이션의 자리 제2편 - 아카데미(오스카)상

  지난 2월 27일 이곳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브래드 버드 감독,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제작의 「인크레더블」이 드림웍스의 경쟁작 「샤크」와 「슈렉 2」를 물리치고 장편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수상했다.
  애니메이션 아티스트들을 영화 제작 과정에는 얼씬도 못하게 하는 할리우드의 꽉 막힌 '시스템' 속에서 오랜 기간 고생해 온 브래드 버드에게 이번 애니메이션 작품상은 큰 의미를 갖는다. 지난 수년 동안 창작 지휘권은 애니메이션 감독들 손에서 작가, 제작자, 그리고 애니메이션에는 경험이 일천한 경영진들 손으로 넘어가면서 퇴보를 거듭했다. 애니메이터들은 애니메이션에 걸맞지 않는 명령이라도 무조건 따르기 위한 기술자로 전락했다. 비유를 하자면 미국의 애니메이션 감독들은 건축의 '건' 자도 모르는 사람이 그린 청사진으로 고층 빌딩을 짓는 건설 노동자인 셈이다.
  다른 국가의 애니메이션이나 미국의 일반 영화의 경우 영화 감독은 시나리오 수정, 배우 선택, 영화 편집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권한이 부여된 그야말로 신의 손이다. 반면 미국의 애니메이션 영화는 지난 몇 년간 소위 '감독'(실제로 별로 '감독'하는 것도 없지만)이 여러 명씩 있어서 '애니메이션 감독'이라는 직함은 그 의미가 거의 퇴색되었다(대신 무게감이 다소 떨어지는 '애니메이션 주임'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즉, 애니메이터가 아닌 사람도 많이 섞여 있는 다수의 위원회가 영화를 감독하는 셈이다. 지난 수십 년간 미국에서 제작된 장편 애니메이션을 모두 뒤져 엔딩 크레딧을 죽 살펴보면 감독과 각본 이름이 점점 많아짐을 알 수 있다.
  어떻게 네 명이 한 영화를 감독할 수 있을까? 왜 각본을 열 명씩이나 달라붙어 써야 하는 걸까? 개인적으로 이런 '공장 생산 라인' 같은 시스템이 장편 영화로서의 애니메이션의 전반적인 상태를 악화시켰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인크레더블」이 아카데미상을 비롯한 각종 상과 표창을 휩쓴 것은 애니메이션을 다시 애니메이터들의 손으로 넘겨 준 '쾌거'라고 할만하다.
  브래드 버드는 요즘 대부분의 장편 애니메이션에 넘쳐나는 공동 감독들 없이 혼자서 「인크레더블」을 감독했을 뿐만 아니라 아이디어를 직접 생각해내서 오리지널 각본을 썼으며(아카데미 오리지널 각본상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에는 실패), 영화 사상 가장 귀여운 캐릭터인 '에드나 모드'의 목소리 연기를 직접 하기도 했다(애니메이션 캐릭터 에드나 모드는 「제임스 본드」 피어스 브로스넌과 공동으로 최고 의상 디자인상을 코믹하게 시상하기도 했다). 이 영화 하나로 브래드 버드는 전 할리우드에 애니메이터는 창작자이자 작가, 배우, 아티스트,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 제작자라는 사실을 알린 것이다(할리우드가 이 사실을 염두에 둘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인크레더블」은 또한 애니메이션 업계를 주무르는 거물들에게 애니메이터들은 그들이 제일 잘하는 것들을 하도록 맡겨두면 작가, 컨설턴트, 경영진들이 떼거지로 달려들어 도와주지 않아도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확고부동한 증거를 보여주었다.
  애니메이션을 공부하는 미국의 학생들 중 브래드 버드를 영웅시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다음 세대에는 제2의 브래드 버드가 많이 탄생할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열쇠는 픽사가 쥐고 있다. 브래드 버드는 수상 소감에서 픽사의 '삼총사' 스티브 잡스, 존 래세터, 에드 캣멀에게 '전세계에서 최고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만들어 준 것에 사의를 표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전 직원들에게도 감사를 했고 디즈니를 은근히 찌르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며 마케팅 부서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했다(영화의 예술적인 면에는 디즈니사가 거의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정확히 암시하는 것이다). 이렇게 긍정적인 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 시상식은 이전에도 그랬듯이 할리우드는 애니메이션을 여전히 깔보고 있다는 인상을 주면서 오점을 남겼다. 생방송으로 TV 중계되는 아카데미 시상식은 재미없고 너무 길다는 불평을 들은 지 오래이다. 후보에 오른 영화에 대강 맞춰 현란, 요란하게 만든 우스꽝스러운 춤과 노래가 계속되다 보면 4~5시간씩 늘어진다. 이런 유치한 쇼는 그 동안 없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시상식이 길다는 불평이 계속되자 아카데미 측에서는 올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상은 후보자가 그냥 앉은자리에서 받도록 했다. 무슨 싸구려 게임쇼 우승자처럼 말이다. 올해 「라이언」의 크리스 랜더스가 수상한 단편 애니메이션 작품상이 바로 그런 상 중의 하나였다. 이러한 부문의 상은 수상 소감을 말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애니메이션이 또 한번 모욕을 당한 것은 장편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시상하기 전 로빈 월리엄스가 재미도 없고 관련도 없으며 제멋에만 들뜬 코미디 모놀로그를 연기했을 때였다. 애니메이션이 영화에 얼마나 엄청난 영향을 끼쳤는지 언급하거나 다른 분야의 시상자들이 그렇듯이 애니메이션의 역사와 독특성을 소개할 수도 있는 시간이거늘 로빈 월리암스는 잭 니콜슨 버전의 「벅스 버니」 흉내나 내고(애니메이션의 초점을 애니메이터가 아닌 배우한테로 약삭빠르게 돌리는 행위), 비아그라 농담이나 해댔다. 시상자로 로빈 월리암스를 선정한 것만 봐도 할리우드에서 아직도 얼마나 애니메이션을 유치하고 코미디에 한정되어 있으며 인기를 끌수 있는 층도 제한된 단순한 매체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INNOCENCE」이 후보에 오르지 않은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인크레더블」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방금 열거된 특징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느낄 텐데 그러한 잘 만들어진 영화에 부합하는 아카데미상 시상 순간이 아주 무례한 저질 코미디로 망쳐버렸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본인이 사랑해 마지않는 애니메이션에 대한 가장 큰 모욕은 '장편 애니메이션 작품상' 부문 자체라고 본다. 왜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끼리만 경쟁해야 하는가? 다른 일반 영화들과 경쟁하면 안 될 이유가 무엇인가?
  아카데미는 4년 전 이 부문을 신설함으로써 일부 애니메이션 매니아들의 불만을 잠재우는 한편 진정한 예술 형태로서의 애니메이션은 거의 무시해버릴 수 있는 구실을 만들었다. 한쪽에서는 우리를 인정하는 척 하면서 동시에 한 구석에 몰아넣고 입 닥치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옹졸한 행동이다. 아카데미가 그럴 의도는 없었겠지만 어쨌든 결과는 분명히 그렇다. 애니메이션계에서는 애니메이션 부문이 신설된 것을 대부분 반기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당분간은 아카데미상뿐만 아니라 예술적, 상업적 측면에서도 애니메이션끼리만의 경쟁 체제가 지속될 것이다. 애니메이션은 「인크레더블」과 같은 드문 예를 제외하고는 미국에서 여전히 독립되고 중요성이 떨어지는 영화 매체의 위치에 머물게 될 것이다. 일반 영화와 경쟁하지 않는 한 성장도 요원하다. 「인크레더블」은 작품상, 브래드 버드는 감독상 후보에 오르기에 충분했고 더 나아가 수상 자격에도 손색이 없었다.

[뉴타입 2005년 4월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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