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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2004.12.31 09:39

애니메이션 오케스트라

조회 수 538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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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은 공동 작업이다.
애니메이션 작업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은 마치 오케스트라의 단원처럼 멋진 하모니를 만들어 내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각자의 역할은 다르지만 이들이 참여하는 과정 역시 애니메이션 제작의 일부이므로 이들 역시 광의의 애니메이터이다.


  만화책, 소설, 조각, 음악, 그림, 심지어 영화와는 달리 애니메이션은 단 한편의 TV 만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도 다양한 재능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오케스트라처럼 완벽히 조화를 이뤄야만 한다. 대부분의 예술은 그 본질상 형태가 어떻든 간에 개인 노력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비전'이 희생될 위험은 없다. 만화책은 공동작업이지만 주로 연필작가, 잉크작가, 채색가, 스토리 작가라는 소규모 그룹의 팀이기 때문에 양질의 만화책을 창작하기가 비교적 쉽다. 또한 만화책 작업은 위험부담도 적다. 애니메이션에 비해 인쇄 및 배급 비용이 휠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경우 물론 복잡한 예술 장르지만 배우의 얼굴이 현실의 '스타일'과 맞지 않을 위험 따위는 결코 없다. 원래 실존하는 '현실'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현실적'으로 보인다. 애니메이션은 그렇지 못하다. 애니메이션이 전달하는 이미지가 아무리 비현실적으로 보여도 관객들에게는 실제처럼 느껴지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세세한 부분 하나하나가 무에서 창작되어야 하며 창작 방식은 일관적인 미술 감독 방식에 따라야 한다. 또한 한정된 예산 하에 빠듯한 일정에 따라야 한다. 창작 담당자와 그 외 담당자들이 서로 조화롭게 일하지 않으면 전 체제가 붕괴된다.
  대부분의 애니메이터들은 인정하기 싫어하지만 애니메이션은 다름 아닌 자동차 같은 조립 라인 산업이다. 유일한 주요 차이점은 자동차 부품 조립은 로봇식이라 볼 수 있지만 애니메이션 창작 과정은 창의력을 요한다는 점이다. 창의력이 발휘될 때마다 전체 작업을 삐끗하게 할 수 있는 수많은 'X-요소'들이 만들어진다.
창의력이란 버튼처럼 누구나 쉽게 누르거나 레버처럼 잡아당길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본질상 지극히 비과학적이다. 따라서 애니메이터, 제작진, 경영진 팀이 조직화된 마감일 체제 안에서 애니메이션의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제작 모델을 만들어 내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미술 및 애니메이션 학교들이 상업 매체의 조직화된 틀에 맞게 학생들을 준비시키는 경우는 드물다. 따라서 학생들이 애니메이션 현장에 진출 시 이루 말할 수 없이 극심한 '문화 충격'과 압박을 받는다. 애니메이터들의 '예술가적 과격한 성질'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의 대부분의 애니메이션 업체에서는 다소 가벼운 규정을 채택했다. 따라서 특정 복장을 하거나 정시에 출퇴근할 필요는 없다. 마감일만 맞추고 결과물이 만족스럽기만 하다면 직장 생활과 관련된 일반적인 예절은 대부분 무시된다.
  동전의 다른 한쪽을 본다면, 경영진들의 배경과 안건, 활용 방법에 있어서 애니메이터들과는 180도로 다르다. 그들의 임무는 매년 특정한 재정적 목표를 달성하여 업체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런 일은 현장의 애니메이터들의 일에 비해서는 훨씬 덜 고상하게 들리겠지만 경영진들이 없다면 일도 없다. 완수해야 할 일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뿐만 아니라 향후에는 더 많은 일이 있도록 하는 것이 경영진들의 임무인 경우가 많다. 그들이 특정한 프로젝트를 개인적으로 얼마나 좋아하느냐와 상관없이 프로젝트의 비효율성이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거나 회사에 수익을 창출해 주지 못한다면 없애버리는 것 외에 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된다.
  애니메이터들은 이런 종류의 결정을 개인적으로 섭섭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은데 만일 업체에서 돈이 안 되는 프로젝트에 계속 회사자금을 사용한다면 회사 자체가 파산하여 애니메이터, 경영진 할 것 없이 관련자 모두 실업자 신세가 될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따라서, 경영진들은 조심성 많은 족속이 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의 결정에 전 업체의 생계가 달려 있다. 아무리 규모와 영향력이 크더라도 투자 회수가 안 되는 프로젝트에 돈을 낭비할 만큼 무모한 회사는 없다. 그들의 지시에 많은 것이 달려 있기 때문에 경영진들은 구체적인 자료에 크게 의존한다. 엔터테인먼트 동향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관객들을 시험하기도 하고 과거의 대중문화 기복 상황을 조사하여 미래 예측의 자료로 삼기도 한다. 물론 경영진들도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만의 직관과 감정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일처리를 제아무리 조직적으로 하려고 해도 의사 결정 과정에 개인적인 취향과 선호도가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있다. 유감스럽지만 이것은 프로젝트에는 치명적일 수 있다. 될 수 있는 한 형평성을 유지하는 것이 경영진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작 관련 결정이 창작과 관련 없는 지위에 있는 사람의 개인적인 편견으로 내려진다면 애니메이션 전체의 예술적 방향이 벗어날 수 있다.
  이 때문에 책임과 방법론, 목표가 근본적으로 다른 애니메이터들과 경영진 양자간에 종종 마찰이 발생하고 제작 스태프는 그 가운데 끼게 된다. 제작 담당자들은 그래서 이들 간에 외교사절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애니메이터들에게는 그들에게 가장 잘 맞는 방법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한편 비용 효과적인 예산과 현실성 있는 일정을 유지하는 두 가지 일에 서로 균형이 맞도록 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이다.
  미국 고유의 전통 중에는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흔한 관습처럼 악수하는 대신 그 사람 바로 뒤에 서서 그들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상징적인 행위가 있다. 조립 라인에 서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우리 모두 생각해 본다면 작가, 아티스트, 제작 보조, 경영진, 감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팀에 있는 모두가 애니메이터이다. 모두가 오케스트라의 일원이다. 모두가 하모니를 만들어 내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애니메이션은 공동 작업이다. 애니메이션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은 애니메이션 과정의 일부이므로 애니메이터이다. 애니메이션의 모든 사람이 갖는 공통적인 임무는 동료들이 보다 수월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이 철학이 채택되면 예술과 산업간에 이상적인 균형이 잡히고 그야말로 아름다운 교향곡이 완성될 것이다.

[뉴타입 2005년 1월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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