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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11월 30일, 추수 감사절 연휴를 맞은 지난달 말 일요일이었다. 극장에 걸린 「브라더 베어」에는 어느 정도 관객이 들고 있었고, 흥행에 크게 성공했던 「캐러비안의 해적」은 DVD 출시를 앞두고 있었다. '미키의 고향'인 디즈니사에는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였다. 바로 그 날, 디즈니가 디즈니를 떠난 사건만 빼면 말이다. 월트 디즈니의 조카이자 월트 디즈니사에 근무하는 월트 디즈니 부계 친척 중 마지막 남은 인물인 로이 E. 디즈니가 세 페이지에 걸친 사직서와 함께 "슬프고도 유감스럽게" 부회장 직에서 물러난 것은 가히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큰 사건이었다.
  "당신(아이즈너)도 잘 알고 있다시피 최근 몇 년간 회사 경영 방향과 스타일에 있어서 당신과 나는 매우 심각한 의견 차가 있었다. 그 저의를 알 수 없으나 당신은 나와 내 동료들을 이간질해 왔으며 심지어는 내 동료들로 하여금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고하라고까지 했는데 이는 나로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밝힌 로이 디즈니는 계속해서 "마이클, 당신의 행동은 당신이 월트 디즈니사를 경영해 온 지난 19년 간을 평가해 볼 때 당신은 더 이상 회사 경영의 적합자가 아니라는 나와 이사회의 명확하고도 명백한 주장에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떠나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당신이라는 것이 내 진심이다."면서 아이즈너에게 직접적으로 여러 가지 혹독한 비판을 가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아이즈너는 픽사, 미라맥스와 같은 창의적인 파트너들과의 건설적인 관계를 구축, 유지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창의적인 두뇌의 손실"로 "능력 있는 모든 직원을 잃게"했다고 비난했다. 지금까지 디즈니의 역사상 가장 어려운 시간을 맞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디즈니사는, 자기야말로 로이 자신이 구조 조정에 앞장서 결국 아이즈너를 회장으로 맞아들이게 되었던 1984년처럼 "새롭고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한 시기라고 역설하며 글을 마쳤다.
  언론과 일반에 사직서의 모든 내용을 공개하도록 사내 내규에 규정되어 있는 만큼, 로이 디즈니는 아이즈너에 대한 모든 비판 내용을 매우 면밀하게 기록했다. 이렇게 공개적인 비판의 충격이 미국 전역과 전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크게 뒤흔들어 놓은 것은 말할 것도 없으나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태풍의 눈인 애니메이션 업계에서였다. 전국의 애니메이터들은 이 대사건에 너나 할 것 없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소식이 발표된 지불과 몇 분만에 애니메이션 업계는 인터넷과 사무실에서 벌어진 열렬한 토론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이 사건은 단지 당당한 은퇴를 위한 로이의 마지막 발버둥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었고, 이제 디즈니의 직계 자손이 디즈니사를 이끌던 시대가 끝난 것을 슬퍼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디즈니 경영진 사이에 불쾌한 감정을 일으키려고 의도된 무의미한 제스처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한편으로는 로이 디즈니의 폭로로 인해 지난 수년간 대부분의 애니메이터들이 품어 왔던 아이즈너의 인품에 대한 의혹이 풀린 셈이었다 '꿈과 마법을 실현'시키는 월트 디즈니와 달리 아이즈너는 쉽게 빨리 돈을 버는 데 관심이 더 많은 약삭빠른 사업가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하지만, 80년대 초 중반에 벼랑 끝에 몰렸던 디즈니사를 아이즈너가 기사 회생시켰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해야 한다. 「인어 공주」, 「미녀와 야수」, 「라이온 킹」이 나온 것은 바로 아이즈너가 디즈니사를 이끌고 있던 시절이었다. 물론 그런 성공은 대부분 당시 아이즈너의 파트너였던 프랭크 웰스(1994년 헬리콥터 추락으로 사망)의 덕택에 가능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기도 한다.
  이 이야기의 또 다른 면은 로이 디즈니의 투자 매니저 겸 이사인 스탠리 골드의 사직서 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골드 역시 아이즈너의 경영에 대해 혹독하게 비판하고 있다. 아이즈너는 계속해서 창의적인 인재들은 해고하고 평범한 간부들에게는 보너스를 지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단기적인 이익에 눈이 멀어 디즈니의 상징을 뭉개버리고(이것은 최근에 전통 디즈니 영화를 바탕으로, 우후죽순처럼 저예산으로 제작한 비디오용 후속작을 지칭하는 듯 하다), 최근 몇 년간 창의적인 인재의 막대한 손실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이사회는 내용이 아닌 과정을 중요시하는 정책을 실행하는 데 시간과 정력을 다 바치고 있는 듯하다고 골드는 지적하고 있다.
  아이즈너가 정말 지난 수십년 간 계속된 디즈니사의 상대적인 부진의 원인인가, 아니면 로이가 본인의 의사와 반하여 은퇴하게 된 것에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는 것인가? 하는 공방은 계속된다. 디즈니와 골드 모두 디즈니사를 떠나고 싶어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그들이 사임한 이유는, 사직서만이 이사회는 물론 디즈니의 작품들이 요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원인에 대해 의문을 가져온 대중들에게 의미 심장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특정인을 지목한 두 사람의 비판을 통해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입막음을 하려 하는 아이즈너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12월 3일 현재 아이즈너는 문제의 사직서 내용에 대해 크게 반응하지 않고 있으나, 디즈니사 이사회의 승인을 거친 성명에서는 양자의 진술을 "사실이 아니며 인정할 수 없는 것"으로 규정했다. 디즈니의 장편 애니메이션이 지난 몇 년간 인기가 떨어지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브라더 베어」는 그런대로 성공하고 있다. TV애니메이션 부문은 「킴 파서블」시리즈의 장난감이 휴가 기간 동안 최고의 판매고를 올리는 등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으며, 8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초반의 실적에 비하면 미미하지만 회사 주가는 상승했다. 또한, 디즈니사는 단순히 애니메이션 회사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케이블 네트워크, 영화사와 테마 공원도 여럿 소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이 우리들, 즉 애니메이션 애호가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게 마련인데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우리에게 그처럼 많은 즐거움을 가져다 준 회사 내부에서 이런 추한 모습을 본다는 것은 마치 부모님의 싸움을 보는 것처럼 실망스럽고 슬픈 일이다. 이것이 정녕 디즈니사의 창의성을 대표하는 심장부와 냉정하고도 계산적인 두뇌와의 한판승부란 말인가? 시간이 흘러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마법의 왕국'이 큰 내부 의견 차이를 겪고 있다는 것이다. 로이 디즈니와 스탠리 골드의 사임은 세계 최대의 애니메이션 생산 공장의 핵심부를 바꾸어 놓을 대지각 변동의 시발점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장기적인 영향은 전혀 없이 간단히 유야무야될 수도 있겠지만 일단 기다려 봐야 할 것 같다.
  즐거움과 마법이라는 이상을 바탕으로 건설된 제국이 깊은 고뇌에 빠져 있다. 수십억 달러의 돈, 수만 명의 직원들, 전세계의 애호가들, 금융 기관들, 불쾌한 감정, 내분, 이런 모든 것들이 작은 생쥐 한 마리의 양 어깨에 걸려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풍파가 잠잠해지고 나면 월트 디즈니가 꿈꾸었던 그 모습 그대로, 건재한 미키 마우스가 마법의 왕국을 건설했던 그 마법을 가지고 우리와 후손들을 즐겁게 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뉴타입 2004년 1월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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