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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2004.01.26 20:00

2003년 결산과 2004년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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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한 해가 흘렀다. 다가올 미래를 점쳐보기 위해서는 지나간 과거에서 얻은 교훈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03년이라는 애니메이션 전장은 이제 막을 내렸다. 지난 칼럼에서 살펴본 대로 업계 최고 거물인 디즈니와 워너 브러더스는 최근 각각 「브라더 베어」와 「루니툰; 백 인 액션」으로 한판 승부를 벌였고 그 대결의 승리는 어부지리로 픽사가 차지했다! 그렇다. 현재까지 거금 7억4천9백만 달러에 달하는 작년 한해 극장 수입과 나날이 늘어나고 있는 DVD 판매 수입으로부터 가장 이득을 본 회사는 2003년 최대의 애니메이션 블록 버스터인 「니모를 찾아서」의 제작 스튜디오 픽사다. 이는 디즈니의 승리로 간주되는 것이 아니겠냐고 속단하기 쉽겠지만 사실 월트 디즈니는 픽사 영화의 라이센스와 배급만 맡고 있을 뿐이고 영화의 창의적인 내용과는 거의 아무런 관련이 없다. 픽사는 앞으로 제작될 몇 편의 영화에서도 디즈니와의 관계를 유지할 것 같긴 하지만 디즈니에게 계약상 구속되었던 시절에 비하면 훨씬 자유롭게 독자적으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다. 로이 E. 디즈니의 가시 돋힌 사직서로 미루어 볼 때 디즈니와 픽사 간의 관계는 이미 긴장 상태에 돌입한 것 같다.
  탄력을 받은 픽사의 성공은 좀처림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이언 자이언트」의 천재 브래드 버드 감독이 늙어가는 슈퍼 히어로 이야기를 다룬 차기 장편작 「인크레더블즈(The Incredibles)」의 예고편이 최근에 소개되어 팬들로 하여금 벌써부터 입맛을 다시게 하고 있다. 1월 마지막 주 현재 8천3백만 달러라는 흥행 성적을 올리며 어느 정도 호응을 얻은 「브라더 베어」나 아쉽게도 2천만 달러를 벌어들이는데 그친 「루니툰; 백 인 액션」의 제작팀들도 최선을 다해 열정적으로 작업에 임했을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픽사의 걸출한 예술가적 철학, 즉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자는 원칙이 애니메이션이나 실사 영화를 가리지 않고 극장가를 평정해버린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2003년에는 높으신 분들이 탁상 행정으로 제작한 「신밧드: 7대양의 전설」과 같은 애니메이션이 설 자리가 없었다. 사실 이 작품은 드림웍스의 전통 수작업 애니메이션에 대한 야심찬 계획에 종말을 고하는 작품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 증거는 미국 전역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돈을 많이 버는 영화라고 해서 꼭 훌륭한 영화라고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엄연한 흥행 성적을 무시한다고 해도, 픽사는 새 영화를 만들 때마다 관객을 매혹시키는 상징물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사실은 무시할 수 없다. 미국 아무 거리에서나 니모 인형을 갖고 다니는 아이들이나 니모 티셔츠를 입고 있는 어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2003년은 니모의 해였다.
  하지만 아직 경쟁은 끝나지 않았다! 「인크레더블」이 있고 디즈니의 마지막 전통 방식의 애니메이션 영화인 「홈 온 더 레인지(Home on the Range)」가 있으며 장편 애니메이션으로서는 최초의 오스카 수상에 빛나는 「슈렉」에 이은 드림웍스의 「슈렉 2」, 그리고 니켈 러디언과 파라마운트에서 모험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극장판 스폰지밥 (The Spongebob Squarepants Movie!)」를 기대할 만 하다. CGI대작 영화 두 편과 수작업 영화 두 편의 대결. 이미 검증된 재미를 보장하는 「극장판 스폰지밥」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전세계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까지 엄청나게 많은 열혈 팬의 파워를 이미 보유하고 있다. 2004년은 「홈 온 더 레인지」와 「극장판 스폰지밥」이 애니메이션 업계를 부흥시키는 한 해가 될 것인가? 시간이 지나야만 알 수 있는 노릇이다. 「극장판 스폰지밥」이 거부할 수 없는 강한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인기 있는 TV프로그램이 극장에서도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광범위하고 두터운 마니아층을 보유한 카툰 네트워크의 「파워 퍼프 걸」도 영화의 흥행 성적은 실망스러운 것으로 평가된 것이 그 예다. 그러나 「극장판 스폰지밥」이나 「홈 온 더 레인지」가 모두 폭삭 망한다고 해도 아직 희망은 있다. 미국 애니메이션계에서 떠돌고 있는 소문에 의하면 픽사의 「인크레더블」의 다음 작품은 브래드 버드가 감독한 전통 방식의 2D 애니메이션 영화가 될 것이라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어 모든 이를 기쁨에 들뜨게 하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직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소문에 불과하기 때문에 새로운 소식이 들어오는 대로 알려드릴 것을 약속한다.
  픽사가 성공을 통해 증명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훌륭한 스토리야말로 박스 오피스 성공의 주 열쇠라는 점이다 이 문제 때문에 항상 시끄러웠던 픽사는 전통적인 애니메이션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변호하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하나의 회사로서 영화 제작의 기술적인 면이 인기의 비결이 아니라 이야기와 등장인물에 있다는 점을 서슴지 않고 지적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니메이션 업체 경영진과 언론에서는 미국 관객들이 수작업 스타일의 애니메이션 영화에 더 이상 관심이 없다는 이상한 생각에 아직 집착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말한 소문이 사실이라면 픽사가 모든 회의론자들이 틀렸음을 한방에 알려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어느 날 픽사가 폭삭 망하는 영화를 만들 수도 있다. 넘치는 창의성으로 난공불락의 아성을 구축한 픽사인지라 픽사에서 형편없는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한 때 디즈니도 그렇지 않았었는가? 작년 초에 회사 전체에 단행된 대규모 구조 조정의 가장 큰 희생자는 전통 장편 애니메이션 부서였다. 대다수가 디즈니와 오랫동안 동고동락해 온 애니메이터와 미술가들이 수없이 직장을 잃었다. 그리고 명절 시즌 직전에 회사 내부 갈등이 공개되면서 명성에 큰 타격을 입었다. 예술에 의존하는 사업이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는 예술 자체의 장점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월트 디즈니는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애니메이션 작품이 그의 비전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직접 관여하려고 모든 노력을 기울인 것이다. 그는 위험을 감수한 인물이었다.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은 적도 있었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며 전위적 영화 제작의 지평을 넓혀갔다. 내부 사람들은 대부분 디즈니사가 악전고투에서 살아남아 다시 회복할 것을 확신하고 있지만 어느 업체도 안전하지는 않으며 명성만으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렇다고 부정적인 모습만 강조하지는 말자. 필자는 설레이는 마음으로 2004년을 바라보고 있다. 애니메이션의 변화, 재창조, 실험, 그리고 바라건대 예술적 발전의 해가 될 것으로 본다. 올해에도 여러분들에게 미국의 따끈따끈한 소식들은 물론 미국 애니메이션계와 애니메이션 제작 스튜디오, 그리고 아티스트들의 속 얘기들을 전해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린다. 아울러, 외국 동향을 살펴보고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산업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한 논평도 계속해 나갈 작정이다. 독자 여러분들의 의견이나 질문도 환영한다. 올 한해도 여러분 모두에게 평안과 즐거움이 넘치는 풍요한 해가 되시길 바란다.

[뉴타입 2004년 2월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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