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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애니메이션계를 둘러싼 격렬한 사건이 날로 늘어만 가는 가운데 또 하나의 충격적인 소식이 미국 애니메이션계를 강타했다. 최근작 「니모를 찾아서」를 비롯, 「토이 스토리」, 「벅스 라이프」, 「몬스터 주식회사」등 불후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든 북 캘리포니아 소재의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 픽사가 지난 1월 30일 월트 디즈니사와의 관계를 단절할 것이라고 발표한 것이다. 그러나 이 기사가 실린 신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결별 소식은 산불처럼 이미 애니메이션계에 급속도로 펴져나가 헐리우드는 마치 벌집을 들쑤셔 놓은 것처럼 떠들썩해졌다. 픽사라는 떡 조각이 돌아오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각 업체 경영진들은 벌써 김칫국부터 마시기 시작했다. 잡스 회장이 폭스, 워너 브라더스사와 배급 문제를 놓고 접촉을 시도했었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애니메이터들을 비롯한 실무진들은 필자가 판단할 수 있는 바로는 전례 없는 충격 그 자체의 반응을 보였다.
  지난 수년간 캘리포니아와 플로리다 주재 양 지사에서 단행한 대규모의 미술가 정리해고 때문에 디즈니와 애니메이션 종사자들 간의 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되었다. 디즈니가 정리 해고를 하게 된 이유는 픽사에서 제작한 영화가 디즈니의 영화 부분 운영 수입의 절반에 달하는 수입을 올리고 있을 정도로 픽사가 디즈니의 주요 수입원이 됨에 따라 디즈니 자체 내의 인재가 필요 없게 되었기 때문인 것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었다. 결과적으로 많은 애니메이터들에게 디즈니와 픽사의 결별은 근시안적이고 편협한 사고의 기업 경영진과 계속해서 갈등을 겪어 온 전 애니메이터계의 실상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장편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면 디즈니가 독보적인 존재였지만, 이제 픽사는 물론, 최초의 애니메이션 장편 분야의 오스카상 수상작이자 두 편 이상의 속편을 준비 중인 「슈렉」등으로 큰 성공을 거둔 드림웍스와도 경쟁해야 할 판이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아니다. 픽사의 다음 두 작품인 「인크레더블(The Incredibles)」(2004년 개봉)과 「카(Cars)」(2005년 개봉)는 현행 체제 하에 제작, 배급되고 이 두 작품을 끝으로 10년여 년 전에 「토이 스토리」로 시작된 디즈니와의 계약이 종료된다.
  양사 간에 갈등을 일으켰던 주요 요인은 소유권 분쟁임이 분명하다. 픽사는 다음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소유권뿐만 아니라 전 수익금의 상당 부분을 요구했다. 또한, 디즈니에게 10퍼센트 미만의 고정 배급 수수료를 지급하는 조건을 요구했다고 한다. 디즈니에게는 크게 불리하게 될 조건이지만, 다른 경쟁 업체들에게는 픽사의 떡고물이라면 단 몇 퍼센트라도 불사하고 뛰어들 만한 조건인 것이다. 하지만 픽사와의 관계를 정리하려는 아이즈너의 의지는 픽사 없이도 회사에 아무런 타격이 없을 것임을 시사한다는 것도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디즈니사는 현재 픽사의 차기작 두 편을 포함한 이전 모든 픽사 영화에 대한 제반 권리를 소유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소유권은 계속 유지된다. 즉, 픽사의 참여나 승인 없이도 얼마든지 속편을 제작할 수 있다는 뜻이다. 「토이 스토리 3」은 이미 픽사 없이 단독 기획 중이라고 아이즈너는 발표했다. 뿐만 아니라 디즈니는 제작 단계의 CGI 애니메이션 영화와 활발한 개발 단계의 장편 만화 영화를 추가로 20편 보유하고 있다.
  반면, 픽사의 선택은 그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독자 노선을 아무도 비난할 수 없을 만큼 확실하다. 픽사는 뛰어난 박스 오피스 기록 이외에도 일하기 좋은 회사라는 평판을 갖고 있다. 픽사에서 일했던 사람들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픽사는 마치 낙원 그 자체였다. 애니메이터들을 제대로 대접하고 만족할 만한 근무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픽사의 경영진들은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양사 CEO가 발표한 성명은 프로다운 자신감을 유지하고 있긴 하지만 '행간을 잘 읽어보면' 그 중심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음을 알고 있다. 가장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이루어진 이혼도 어느 정도의 상처를 피할 수 없는 것처럼 이해할 수 있는 일이긴 하다. '이혼'으로 이렇게 감정이 격양된 가운데 시상식 시즌이 다가 오고 있다. 공교롭게도 디즈니의 「브라더 베어」와 픽사의 「니모를 찾아서」 모두 오스카 애니메이션 작품상 후보에 올랐지만, 「니모를 찾아서」가 상을 차지할 것이라는 것이 기정사실처럼 되어 있다. 간판 상으로는 디즈니의 승리로 간주되겠지만 디즈니는 픽사 영화의 사용권과 배급권을 갖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즉, 디즈니는 영화 홍보와 극장 배급을 담당하고 장난감, T-셔츠를 만들면서 인기 몰이 역할만 하는 반면 영화 자체를 만드는 것은 픽사 소속 애니메이터들 손에 전적으로 달려 있으며, 독창적인 아이디어에 관련된 문제에 있어 디즈니의 개입과 영향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는 것은 업계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사건이 일단락되고 상처 받은 감정이 모두 가라앉은 후, 디즈니와 픽사 양사가 지금의 이 결별이 고통스럽지만 업계 발전을 위해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인정해야 할 것으로 본다. 한 때는 애니메이터들 몇 명으로 이루어진 자그마한 스튜디오에 불과했던 픽사는 그들의 신기술을 활용하여 만든 단편 영화 몇 편을 발판 삼아 '매직 킹덤'의 영역에 진출할 만큼 성장한 신뢰 받는 엔터테인먼트 슈퍼 파워를 구축했다. 미국 자본주의의 핵심에는 경쟁이 자리하고 있다. 픽사는 지금처럼 앞으로도 계속 힘겨운 경쟁 상대가 될 것이다. 하지만 픽사와의 경쟁에 지지 않기 위해 디즈니와 다른 모든 업체들은 더욱 훌륭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내지 않을 수 없게 되며, 픽사의 성공에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지 더욱 깊게 들여다 볼 수 있게 되길 바란다. 픽사가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매스미디어 엔터테인먼트의 핵심 에서 예술적 청렴함을 유지하는 데 대한 교훈을 한두 가지 배운다면 좋을 것이다. 디즈니의 그늘 아래에서조차 질의 평가 기준을 한 단계 끌어 올린 픽사라면, 이제는 더욱더
거칠 것 없이 높은 기준을 수립할 수 있게 된다. 애니메이션의 현장에 틀에 박힌 평범함이 설 자리가 없게 되며 결국 애니메이션 애호가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된다.
  본 칼럼을 통해 필자는 미국 애니메이션계가 지간 수년간 큰 좌절을 겪었음을 여러 번 언급한 바 있다. 또한, 애니메이션계가 살아남으려면 "부흥"이 필요하다는 것 역시 자주 지적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 "비극적인" 사건이 우리가 기다려 온 바로 그 부흥을 알리는 전주곡일지도 모른다는 것이 희망사항이다. 필자가 그 동안 뉴타입에 게재해 온 부족한 칼럼을 빠짐없이 읽어 주신 독자 분들이라면(그 분들께는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리고 싶다) 지난 삼개월 동안 미국 애니메이션계에는 디즈니나 픽사와 관계된 일만 일어난 것인가 하고 의아해하실지도 모르나 사실은 그 반대이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나 큰 사건들이었기에 다룰 수밖에 없었음을 이해해 주시기 바라며 좀 진정되고 나면 그동안 밀린 다른 애니메이션 소식과 이야기들도 서둘러 전해드릴 예정이니 기다려 주시기 바란다.

[뉴타입 2004년 3월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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