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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은 시간 동안에도 참으로 많은 일이 일어난다. 로스앤젤레스 애니메이션 계에 몸담았던 지난 6년 동안의 엄청난 변화를 돌이켜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헐리우드의 대형 애니메이션 제작 업체의 상황에는 기복이 있지만 전국과 전 세계의 군소업체들에 비하면 사치에 가까운 근무 조건을 누린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었다.
  필자가 로스앤젤레스로 거처를 옮겼던 1997년만 해도, 중간 규모의 업체들조차 직원들에게 점심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전담 마사지 치료사까지 두는 일이 아주 흔했고, 회사측이 비용을 부담하는 파티, 소풍과 같은 행사도 무수히 열렸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일자리가 풍부했다는 점이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연필만 쥘 줄 알아도 구할 수 있는 일자리가 널려 있는 것 같은 상황이 한동안 계속 되었다. 설령 그림을 못 그린다 해도 디지털 잉크와 페인트의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애니메이션이나 미술 분야에 전혀 경험이 없는 사람이 포토샵 화가로 일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들은 주로 '채우기(floodfi1ling)' 라는 공정을 통한 배경과 색상 키 미술 작업을 담당했는데 미술 감독들은 번호 몇 번을 사용해서 무슨 색을 칠하라는 식으로 작업 지시를 하곤 했다.
  당시에는 마감 일이 촉박했다. 하긴 마감 일이 촉박하지 않았던 적은 없는 듯 하지만, 그 때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일을 분담했기 때문에 견디기가 더 수월했던 것 같다. 전반적으로 모든 것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듯한 분위기였다. 애니메이션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이 치솟고 있었고, 늘어만 가는 애니메이션 영화와 TV 쇼의 수요를 채우기 위해 만화를 만들어 본 적도 없는 업체들이 애니메이션 간판을 잇달아 내걸고 있었다. 애니메이션 업계의 그러한 가속 행진이 멈출 것이라는 것을 애니메이터들은 상상도 할수 없었다. '캘리포니아 금광 러시'가 재현된 형국이었고 다들 그 속에서 한몫 보기를 꿈꾸었다.
  제작 업체들은 게임 방, 직원용 요가 강좌, 영화 관람 등 각종 혜택을 앞세워 재능 있는 미술가들을 끌어들였고 우리들은 끝이 안보이는 파티에 자연스럽게 빠져들었다.
  마치 애니메이션 계의 모든 사람들이 복권에 당첨된 것 같았다. 돈을 물 쓰듯 하면서 록 스타처럼 살기 시작한 애니메이터들도 많아졌다. 파티는 끝없이 계속될 것이라는 것을 의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우리는 단맛에 푹 빠져버렸다. 이러한 상황은 언젠가는 끝이 날 것이며 그 때 미처 대비하지 못한 사람은 갑작스러운 충격을 받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동료들과의 대화에서 여러 번 나왔었고 매번 모두 수긍했었던 것이 생각난다.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생각은 들어맞았다.
  4년이 채 지나지 않아 극장과 방송 전파는 만화로 과포화 상태가 되었고 관객들이 만화라면 질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자 곧 애니메이션 업계에는 엄청난 정리 해고의 바람이 불었고 제작업체들은 줄어든 예산과 일거리에 맞추기 위해 구조 조정을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헐리우드 애니메이션계에 절망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 잘나가던 시절이 순식간에 다시 돌아오기만을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동안, 뛰어난 재능을 갖춘 많은 미술가들은 저축해 놓은 돈을 야금야금 까먹고 있다.
  지금 형편으로 봐서는 일감이 끊어진지 하도 오래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잘나가던 시절이 내일 당장 돌아온다고 해도 그 동안의 손해를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로스앤젤레스를 떠나는 미술가들도 많고 입에 풀칠하기 위해 어쩔 수없이 다른 분야에서 직장을 구하는 경우도있다.
  이런 상황이 닥치리라는 것을 예상했어야 했다. 미국 애니메이션이 기복을 겪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60년대에 한나 바바라가 TV 애니메이션을 발명하다시피 했을 때 업계는 이와 비슷한 성장을 경험했다. 최초의 TV용 애니메이션 시트콤인 「프린스톤」을 위해 한나 바바라는 한정적이고 단순하지만 제작하기 쉽고도 시각적인 매력을 갖춘 스타일을 개발했고 이것을 계기로 TV 만화의 새로운 시대가 활짝 열렸다.
  좀 더 작은 스케일에서 보자면 우리가 최근에 누렸던 것과 비슷한 붐을 일으킨 계기가되었다. 70년대에 들어서자 3대 TV 네트워크는 모두 토요일 아침 만화 시청률 경쟁을 벌였고 '상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 정신 없이 달려가는 동안 이야기하기 기술은 완전히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 후 80년대 초에는 벨기에 만화책 시리즈를 바탕으로 한 「스머프」가 만화 뿐 아니라 판매용 상품으로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스퍼프 관련 장난감, 인형, 작은 입상, 옷, 그 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상품들이 가게를 뒤덮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애니메이션에는 새로운 숙제가 생겼다. 즉, 만화가 재미있는 이야기나 들려주면 되던 시대는 지나가고 상품을 팔리게 해야하는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토요일 아침 만화들은 대부분 「마이 리틀 포니(My little Pony)」, 「히맨(He-Man)」, 「패크맨(Pac-Man)」과 같이 인기 있는 장난감이나 비디오게임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채워졌다. 애니메이션이 상품 제조 업체의 노예가 된 것이다.
  상품 중심의 오락물이 네트워크를 지배했고 토요일 아침 만화는 30분 짜리 광고물로 전락 했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유행이란 빨리 찾아왔다가 금방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애니메이션의 이런 유행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국 관객들은 허울만 좋은 과도한 상업화 현상의 본질을 간파하게 되었고 일시적인 유행의 열기는 금방 식어버렸다. 그 와중에 애니메이션이 입은 피해는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관객들은 애니메이션과 한물 간 유행을 연관짓고는 애니메이션 관람을 중단해 버린 것이다.
  애니메이터들의 꾸준하던 일감은 갑자기 뚝 끊겼다. 지금 그들이 대량 실직 신세인 것처럼 말이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거늘, 오호 통재라. 우리는 너무 자만했다. 우리가 어떤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도 미국 국민들에게는 족족 먹혀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들의 비위를 맞추느라 분주한 나머지 경기 침체에 대비하는 것에는 소홀했다.
  오락 산업이나 예술 계통에 뛰어든다면 '안정'이 보장될 것이라는 기대는 애초에 버려야 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밥줄이 전적으로 변덕이 죽 끓듯 하는 미국 대중에게 달려있는 애니메이터들은 혹독한 경기 침체에 대비할 줄 알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제작업체들도, 반짝하는 유행에 편승하는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면 당장은 이익을 보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으로는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요즘에는 첨단 기술이 발달한 덕택에 공정이 간소화되기는 했지만 애니메이션은 여전히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매체이다. 따라서, 미래를 내다보며 신중하고 현명하게 접근해야만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이 어려운 미국의 애니메이션 사정이 하루 빨리 회복되기를 바라며 또한 이번에는 과거의 아픔을 통해 성숙해진 모습으로 예측 불허의 변화에 대비할 수 있기를 바란다.

[뉴타입 2003년 3월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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