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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에서는 명절 영화 시즌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올해 애니메이션업계의 양대 산맥인 디즈니와 워너 브러더스가 미국에서 벌이는 전쟁을 지켜보게 된다. 장편 만화 영화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월트 디즈니와 월트 디즈니가 가는 곳마다 그림자처럼 쫓아다니고 있는 워너 브러더스는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며 지난 수십 년 간 뚜렷한 경쟁자 없이 업계를 독식해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두 제작사의 애니메이션 흥행 성적이 주춤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챔피언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선두 주자는 바로 픽사. 비록 배급사인 디즈니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듯 보이지만 디즈니가 배급을 맡느냐 아니냐에 관계없이 확실한 흥행의 보증 수표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드림웍스 역시 대성공을 거둔 CGI 애니메이션 영화 「슈렉」의 속편을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최소한 두 편 이상의 속편이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컬럼에서 다뤄왔던 것처럼 수년간 미국에서는 전통적인 수작업 장편 만화 영화들이 고전을 면치 못했다. 제작업체들은 관객들이 CGI 애니메이션 영화만 관심이 있다는 잘못된 판단 하에 수작업 장편 만화 영화의 제작을 거의 중단하다시피 했다.
  그러나 관객들이 새로워 보이는 것에 호응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지만, 기술이 빈약한 스토리를 탄탄하게 만들 수는 없다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단순한 통계 수치만 본다면 관객들은 예전만큼 수작업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기 쉽다.
  그 결과 올해 명절 영화 시즌에는 미국 수작업 애니메이션의 사활을 건 중대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디즈니와 워너 브러더스는 업계 전체를 살리거나 혹은 죽일 수도 있는 영화들을 들고 나와 대전 중이다. 이 상투적이고 미덥지 못한 두 전사 중에 미국 애니메이션의 구원자가 나오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유감스러운 현실이다. 명절 시즌 애니메이션을 장악하기 위한 싸움에서 디즈니는 11월 1일에 미국에서 개봉한 「브라더 베어」(국내에는 2004년 1월 개봉 예정)로 첫 펀치를 날렸다. 「라이온 킹」 성공의 원동력이 된 '생명의 순환' (Circle of Life) 테마에 의존하고 있는 「브라더 베어」는 분명히 디즈니의 트레이드 마크 스타일이 된 전통적인 디즈니 마법을 다시 불러일으키려는 시도이다. 그러나, 대대적인 마케팅 전략과 디즈니의 막강한 자금력에도 불구하고 「브라더 베어」는 저 예산 공포 영화 패러디 시리즈의 속편의 속편인 디멘젼 필름스의 「무서운 영화 3」에 밀려 개봉 성적이 2위에 그치고 말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무서운 영화 3」은 그 전 주에도 역시 흥행 1위를 기록한 영화라는 사실이다. 즉, 미국인들은 새로 개봉된 디즈니 장편 애니메이션 대신 개봉한지 이미 2주나 지난 저질 농담이 난무하는 소규모 제작사의 얼빠진 저 예산 코미디의 속편의 속편을 선택했다는 뜻이다. 한때는 다른 영화사들이 흥행 자동 보증 수표인 디즈니 영화의 개봉 일을 피해서 자사 작품을 개봉하려고 갖은 방법을 총동원하고는 했는데, 지금은 디즈니가 디멘젼의 패러디 영화에 무릎을 꿇고 있다니 기가 막힌 일이다. 설상가상으로 「브라더 베어」에 대한 영화 비평가들의 반응 역시 신통치 않다. 「브라더 베어」는 상업적 성공은 물론 작품성도 크게 인정받았어야 하지만, 두 마리 토끼 중 한 마리도 잡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제 믿을 것은 미국에서 11월 14일에 영화 접전 장에 뛰어들 예정인 워너 브러더스의 「돌아온 루니 튠」(Looney Tunes: Back in Action). 이 영화에서는 워너 브러더스의 애니메이션 슈퍼 스타(벅스 버니, 대피 덕 등)를 주연으로 내세우고 「미이라」의 브렌단 프레이저, TV쇼 「다마와 그레그」로 주로 알려진 제나 엘프먼 등의 영화 배우들을 조연으로 삼아 「스페이스 잼」의 전통을 다시 한 번 이어 받았다. 이 영화의 줄거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직 피상적이다. 이 영화의 TV선전과 거리 광고는 홍수를 이룰 지경이지만 정작 영화 줄거리에 대해 알려주는 것은 하나도 없다. 제작사 측에서는 '스타 파워'에 전적으로 의존한 이 영화를 보러 사람들이 극장에 몰려들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한껏 부풀려진 광고에서 말하는 대로 스토리가(스토리가 있기나 하다면) 과연 관객의 기대를 충족시킬 것인지는 두고 봐야 알 것이다. 이 영화들 중 어느 하나, 혹은 둘 다 성공을 거둔다 할지라도 그러한 성공은 영화사상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두 3부작 시리즈의 결론편인 「매트릭스: 레볼루션」 (워너 브러더스-11월 5일 국내 개봉 중)과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뉴라인 시네마-12월 17일 미국 개봉 예정)의 빛에 가리고 말 것이 분명하다. 이들 영화가 명절 가족용 영화는 아니라 할지라도 세우스 박사의 어린이용 책 「모자 속의 고양이」를 각색한 마이크 마이어스 주연의 동명 가족영화(11월 14일 미국 개봉 중)가 「브라더 베어」와 「루니 튠」을 기다리고 있다.
  미국의 전통 애니메이션 업계 전체의 운명은 양대 거물 기업 챔피언의 연약한 어깨에 걸려 있다. 양사 모두 관객들 유인 작전으로 '전통 형식으로 복귀'를 꾀하고 있는 것 같다. 이로 인해 손으로 그린 만화가 가진 특별한 매력에 대중들이 다시 빠지게 되길 애니메이션 업계에 종시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바라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어마어마한 중압감과 높은 기대감은 어떠한 한 업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찰지도 모른다. 디즈니가 현재 제작 진행 중인 전통 장편 애니메이션은 한 편 뿐이며(가제: Home on the Range), 추가 제작 계획은 없음을 이미 발표했다. 워너 브러더스의 TV 애니메이션 부서는 활발히 활동 중이지만 장편 만화 영화는 거의 제작하지 않고 있다.
  애니메이션 게임에서 최대의 선수는 언제나 디즈니였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지만, 워너 브러더스 역시 언제나 자기보다 몸집이 더 큰 상대를 끊임없이 괴롭힌 젊고 패기 있는 선수였다. 미국의 애니메이터 또는 만화 애호가를 아무나 붙잡고 가장 좋아하는 만화 스타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미키 마우스나 벅스 버니가 1위를 차지할 것이다. 이들 캐릭터는 미국 문화에 없어서는 안될 요소이자 미국 역사에 길이 남을 초상들이다. 디즈니와 워너 브러더스의 클래식 캐릭터들의 스타일과 모양은 누구나 간직하고 싶은 것이지만 「니모를 찾아서」와 「슈렉」은 우리가 그 동안 익숙해져 있던 모든 것과는 다른 모습을 선보이면서 영과 관객들에게 환상적인 시각적 매력으로 다가섰던 것이다. 우리의 사랑을 듬뿍받는 만화 스타들을 만들어 낸 회사들이 알아야 할 것은 그들의 인기와 명성은 영화 제작의 기술적 발전과 같은 무미 건조한 것들에 의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패의 위험을 무릅쓰고 과감히 창조적인 실험을 거듭한 결과 힘들게 얻어진 승리였다. 디즈니와 워너 브러더스가 애니메이션의 독보적인 챔피언 자리를 고수하려면 그들의 애니메이션 제국을 건설했던 창조적인 정신의 소유자들이 간직한 난해한 비밀을 배우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만 한다. 물론, 수작업 애니메이션 장편 영화가 아직 발을 들여놓지 못한 광활한 스타일의 영역이 탐험의 손길을 기다리며 남아 있다. 이것이 바로, 한 때 아무도 막지 못했던 이 두 애니메이션 거물들의 힘을 다시 일으키는 열쇠가 될 것이다.

[뉴타입 2003년 12월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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