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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타입에 기고한 칼럼에서 거의 매번 언급했다시피, 미국 애니메이션 업계는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쳐 왔다.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에 애니메이션은 예술적인 측면에서는 물론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당시 쏟아져 나온 엄청난 물량의 애니메이션 '상품'으로 미국 관객들은 질식할 지경이었으며,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처럼, 양적으로 우세한 저질 애니메이션이 질높은 소수 애니메이션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결국 애니메이션 업계는 수입 아니메 시리즈와 픽사 영화 몇 편들로 겨우 유지되는 형편에 빠졌다. 한 때 영화를 누렸던 애니메이션 업계가 마침내 서서히 기울어가는 듯 했다. 황혼이 드리워져 있고 앞날은 캄캄했다.
  하지만, 한밤중이 지나면 언제나 새벽이 오는 법. 업계에도 다시 밝은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디즈니의 「라이온킹」에서 노래한 것처럼 미국 애니메이션은 생명의 순환(Circle of Life)을 겪고 있는 것 같다. 숨을 거둬 땅에 묻히고 썩었지만 그것이 밑거름이 되어 미국 애니메이션의 신기원이 열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 번 쓰러졌지만 다시 비추는 서광과 환생과 같은 경험을 발판으로 이제 새로운 미래 건설을 꿈꿀 수 있을 것이다. 대체적으로 극단적인 회의주의자에 속하는 필자의 눈에도 지난 달은 그 동안 강압적인 기업 분위기에서 '허용되지 않았던' 스타일과 신실함으로 고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분명히 있음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낙관론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애니메이션 작품의 질과 창의성에 언론이 주목하는 것은 물론 우수성을 인정하는 각종 상을 많이 받고 있다는 점이다. 픽사의 「니모를 찾아서」는 2003년 아카데미 애니메이션 최고 작품상뿐만 아니라 전세계 애니메이션계의 최고 영예인 애니 상을 휩쓸었다. 또한, Les Armateurs의 저예산 전통 장편 애니메이션인 「벨빌의 세 쌍둥이(The Triplets of Bellville)」나 고 피시 픽처스(Go Fish Pictures)의 「천년여우」 역시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며 인기를 누렸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 관객들이 접할수 있었던 비 디즈니 스타일의 애니메이션이라고는 「달려라 번개호」, 「러그래츠」 같은 것 뿐이었다. 「벨빌의 세 쌍둥이」, 「천년여우」는 몇 년 전에는 미국에서 배급사를 찾기도 힘들었겠지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같은 영화 덕분에 미국 관객들은 형태와 길이, 예산, 언어가 더욱 다양한 질 높은 애니메이션에 점점 이끌리고 있는 것이다.
  「매트릭스」3부작의 인기 열풍을 타고 DVD용으로 제작된 "애니 매트릭스" 역시 각종상 후보에 올랐고, 최고 홈 엔터테인먼트 애니메이션 제작 부문에서 애니 상을 수상했다. 월트 디즈니와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1940년대 중반에 시작했던 미완의 단편 애니메이션 프로젝트 「데스티노(Destino)」가 월트 디즈니의 조카 로이 E. 디즈니를 제작자로 하여 마침내 완성되었다. 이 역시 아카데미 상 최고 단편 애니메이션 부분의 후보에 올랐다. 수상하지는 못했으나 표현 기법의 측면에서는 전적으로 비평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았으며, 디즈니는 순수하게 '예술을 위한 예술' 작품을 탄생시킨 개가를 올렸다. 애니메이션 업계 종사자들이 이러한 경향에 힘입어 다양한 문화를 담은 새로운 스타일로 실험을 시도하고 고유의 새로운 예술 형태를 만들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올해 아카데미 최고 단편 애니메이션 상은 독립 영화 감독 아담 엘리엇의 「하비 크럼펫(Harvie Krumpet)」이라는 스톱 모션 작품이 차지했다. 주류 엔터테인먼트 매체에서는 더나 할 것 없이 CGI만 주목해야 한다고 여기는 듯한 분위기에서 이 작품이 많은 예산을 들인 CGI 경쟁자들을 제치고 수상의 영예를 차지한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다양한 스타일과 이야기 전달 기법에 대한 관심이 미국의 주류 문화에 파고 들어가기 시작한 반면, 디즈니의 「브라더 베어」와 워너 브러더스의 「루니 툰:백인액션」과 같은 전형적으로 상업화된 작품들은 거의 무시되다시피 했다. 애니메이션계가 최근 이렇게 극심한 부진을 겪었던 것은 미국인들이 똑같은 것을 계속 반복해서 보는 것만 좋아한다는 잘못된 믿음이 넓고도 뿌리깊게 박혀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기존 작품의 전편, 속편, 비디오용 저예산 속편 등이 홍수를 이루고 있는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특히, 디즈니의 전통장편들은 「미녀와 야수 2」, 「노틀담의 꼽추 2」, 「라이온 킹 2」, 「라이온 킹 1.5」 등 속편을 끊임없이 내놓고 있다). 애니메이터들은 이미 오랫동안 알고 있었던 바인 '사람들은 다양한 것을 좋아한다'는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을 애니메이션 제작 업체의 높으신 분들도 이제는 서서히 인식하기 시작하고 있다.
  둘째, 기술 발전과 두터워지는 해외 인력층 덕분에 질높은 TV 애니메이션 제작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주간 TV 만화도 그 모체가 되는 장편 애니메이션 못지 않은 질을 보여주기 시작하고 있다. 주요 업체에서 모두 진행 중인 프로젝트들 중에는 지금까지 찾아볼 수 없었던 야심찬 시도도 많이 있다. TV의 만화 수요가 점점 커지고 있는 가운데 니켈러디언은 재방송을 포함해 만화만 방영하는 케이블 방송국인 '니크툰 TV'를 개국했다. 카툰 네트워크는 자체 제작했던 시리즈를 계속 확장하는 한편, 어느 실사 영화 못지 않게 적극적인 홍보를 펼치고 있다. 워너 브러더스의 키즈 WB 네트워크와 디즈니의 툰 디즈니/디즈니 채널 네트워크 역시 마찬가지다. 폭스 네트워크는 '패밀리 가이'의 복귀를 발표했고 드림웍스 TV는 백호 가족을 다룬 「Father of the Pride」라는 CGI 시리즈를 제작중이다. 여덟번째 시즌을 맞이하고 있는 「사우스 파크」는 황금 시간대의 성인 취향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1990년대 말 「심슨 가족」 판박이의 참패로 황금 시간대 TV만화가 거의 사장될 뻔했던 사건의 충격으로부터 벗어나 방송사들은 다시 만화를 방영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란 나라의 경제는 수요 공급 법칙에 지배된다.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져서 질의 판단 기준도 까다로와지고 있다. 이러한 결과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재건의 의지를 갖는데 힘을 주게 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중대한 소식이 있다.
  이번 주 초, 역시 한 때 기업 거물이자 20년간 디즈니사의 CEO였던 마이클 아이즈너 이사장 직함이 박탈되었다. 상세한 내용은 차치하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회사든 개인이든 간에 명성만으로 애니메이션 경주의 수위를 계속 차지할 것으로 기대할 수는 결코 없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난공불락의 강자'로 떠오른 픽사는 겸허한 자세로 끊임없는 발전에 전념하고 있는 듯 하다. 히트작 제조로 이어지는 자신만의 마법 공식을 발견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자체 개발 부서 내에서는 새로운 영역이 추구되고 있고 새로운 가능성이 타진되고 있으며 아무 것도 당연시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모든 사실들이 희망적이고 낙관적인 생각을 품을 수 있는 근거가 되고 있지만, 한 때 위풍당당했던 애니메이션 이야기 제조 공장의 위용을 되찾으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이 새로운 여명을 기반으로 과거의 실수를 딛고 예전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도록 미국 애니메이션의 모습을 재정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뉴타입 2004년 4월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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