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한해동안 미국에서 개봉한 애니메이션들. 그들에 대한 평가는 흥행 성적으로 본다면 어떻게 나뉠까? 그리고 2004년에 이어 2005년까지 불고 있는 인기 애니메이션에 대한 평가는? 한국에서도 큰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인크레더블」과 함께 「슈렉 2」 「폴라 익스프레스」 등 다양한 애니메이션에 대한 작은 결산!
객관적인 데이터를 살펴보면서 수입 금액을 관객 한 명, 한 명의 '투표'로 해석해 보면 내년에도 애니메이션 투표가 계속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대선과 마찬가지로 올해의 '후보'는 실제로 선거에 이길 가능성이 있는 두 명의 유력 후보와 군소 후보들로 구성되어 있다.
지난해 픽사의 「니모를 찾아서」는 관련 상품 매출액을 제외한 순수 흥행 수입만 7억5천만 달러를 거둬들였다. 경쟁작인 드림웍스의 「신밧드」 디즈니의 「브라더 베어」워너 브라더스의 「루니 툰: 백 인 액션의 수입을 몽땅 다 합쳐도 「니모를 찾아서」라는 CGI 초대작에 상대가 되지 못했다. 「니모를 찾아서」가 아카데미 애니메이션 작품상 등 여러 권위 있는 상을 수상한 것도 놀랄 일이 아니었다. 결국 2003 애니메이션 선거의 압도적인 승자는 바로 픽사였다.
최근 미국 대선 결과와 마찬가지로 올해 장편 애니메이션 흥행 대결 역시 막상막하의 치열한 열전이었다. 올해 후보들은 지난 해에 비해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다. 현직 주자인 드림웍스의 「슈렉 2」는 흥행 수익 4억4천1백만 달러의 기염을 토했다. 흥행 성공은 물론 최초의 아카데미 애니메이션 작품상까지 수상했던 「슈렉」의 후속편으로 큰 기대를 모았던 「슈렉 2」는 그 이름값 덕을 톡톡히 봤다. 극장이나 비디오, DVD 등을 통해 「슈렉」을 재밌게 본 관객들이라면 속편도 볼 것이 틀림없었다. 「슈렉 2」가 새로운 관객층을 끌어들이지 못한다 해도(물론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지만) 전작 덕분에 형성된 기존 관객층만으로도 넉넉한 성공을 거뒀을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저위험 고수익 사업이야말로 영화 제작사들의 꿈이다. 그래서 속편을 두 개나 더 제작중이다.
슈렉 열풍에 편승하려는 드림웍스에서는 올해 「샤크」를 내놨다. '「슈렉」 제작팀의 새 영화'라고 자랑하는 예고편과 TV광고를 비롯한 마케팅 공세 그리고 윌 스미스를 주인공 목소리로 내세웠지만 블록버스터 대열에 끼지는 못했다. 「샤크」가 1억6천만 달러라는 준수한 성적을 올리는 동안 CGI 장편의 '발명자' 픽사로부터 「슈렉 2」의 주 경쟁자가 등장했다. 픽사의 수퍼히어로 이야기 「인크레더블」이 그 주인공이다. 8주 만에 2억4천2백만 달러를 벌어들인 「인크레더블」은 픽사에게 또 하나의 메가 히트작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슈렉 2」 대신 올해의 최고 흥행 애니메이션 자리를 차지하기에는 몇 가지 난관이 있다.
첫째, 「인크레더블」은 완전한 오리지널 스토리이다. 즉, 「인크레더블」을 보러 가는 관객들은 대강 감을 잡고 극장을 찾는 「슈렉 2」관객보다 '위험 부담'이 더 크다.
장편 애니메이션 타깃 관객층 연령을 약간 높인 것으로 이미 유명한 드림웍스에 반해, 픽사는 가족 중심의 연소자관람가(G) 영화로만 알려져 있다. 「인크레더블」은 픽사 최초의 부모 동반 연소자 관람가(PG) 영화로서 보다 다양하고 세련된 관객층을 향한 최초의 베팅인 셈이다. 대부분 열렬한 찬사를 받기는 했지만 아이들이 보기에는 너무 폭력적이라고 지적한 비평가들도 있었다.
두 번째로는 「슈렉」보다 더 만화스러운 「인크레더블」의 시각 스타일 때문에, 독신이거나 아이가 없는 보다 냉소적인 젊은 성인 관객들은 「니모를 찾아서」와 「몬스터 주식회사」 제작팀이 만든 영화를 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인크레더블」은 전설적인 마케렁 능력을 소유한 배급사인 디즈니의 이름값을 등에 업고 있다. 이 사실을 감안했을 때 최종 개표 결과를 보면 현재 앞서고 있는 「슈렉 2」를 따라잡을 수도 있다. 물론 제 아무리 디즈니라 해도 「홈 온더 레인지」(디즈니의 마지막 수작업 애니메이션 장편)나 「티쳐즈 펫」(인기 있는 동명 TV시리즈를 각색)의 흥행 성적을 올리진 못했다. 이 두 작품의 흥행 성적은 애니메이션계 거물의 이름이 무색하게도 각각 5천만 달러와 6백만 달러에 그쳤다. 인기있는 TV 시리즈를 기반으로 제작되었으나 그다지 재미를 못 본 장편 애니메이션이 「티쳐즈 펫」 이외에도 여럿 있었던 것을 보면 꼭 이름값이 있다고 해서 「슈렉」과 같은 성공을 거두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파라마운트/니켈러디언의 극장판 「네모네모 스펀지밥」은 6주 만에 7천8백만 달러를 벌었다. TV프로그램 제작비에 약간 상회하는 예산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실제 흥행 수입에 비해 순수익은 매우 크다. 왜냐하면 「인크레더블」이나 「슈렉 2」와 같은 대작 장편보다 제작비가 훨씬 싸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워너브라더스는 CGI 애니메이션과 아동용 책 각색 영화라는 두 가지 흐름에 편승해 돈을 벌어보려고 했으나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크리스 반 앨스버그의 유명한 책을 각색하여 만든 「폴라 익스프레스」는 2억7천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제작비에 비해 7주 동안 1억4천만 달러를 버는 데 그쳐, 슈퍼 스타의 목소리 연기(톰 행크스), 최첨단 모션 캡쳐 애니메이션, CGI 비주얼이 꼭 흥행의 보증 수표는 아니라는 점의 본보기가 되었다.
자, 그렇다면 올해 '애니메이션 선거'의 교훈은 무엇인가? 관객들은 장편 애니메이션이 어떤 매체를 활용하는가에 신경쓰는 것이 아니라 그 동안 오래 우려먹었던 전통적인 디즈니 틀에서 벗어난 독특한 스타일의 코미디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헐리우드의 모든 제작사들은 앞다투어 「슈렉」 영화 템플릿을 베끼기에 바쁠 것으로 예상된다. 「인크레더블」이 「슈렉」의 순익을 앞선다 해도, 경영진들은 어떻게 픽사가 「토이 스토리」 이후에 성공 신화를 이뤄냈는지 결국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에 「인크레더블」의 유사품들을 만들어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픽사의 '성공 비밀'이라는 것은 물론 전혀 비밀이 아니다.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할 뿐이다. 이렇게 간단함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업체의 높으신 분들은 어떤 환상을 갖는 경우가 많다. 픽사의 다음 장편(「Cars」)을 끝으로 디즈니와의 계약이 만료된 후 픽사의 다음 작품이 어떨지 크게 기대되는 바이다. 한편 디즈니는 픽사 없이 단독으로 「토이 스토리 3」 제작에 들어갔다. 토이 스토리 제작팀 없이 토이 스토리 성공 신화를 계속 이어나갈수 있을지 어떨지도 그에 못지않게 기대된다.
미국에서 제작되는 CGI장편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슬픈 일이지만 진정 훌륭한 수작업 장편이 나오려면 몇 년은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것은 필자의 짧은 예측에 불과하다. 결국 미국 '관객/유권자'의 손에 달렸다. 민주주의란 종잡을 수 없을 때도 있으니까.
[뉴타입 2005년 2월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