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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의 CEO 마이클 아이즈너의 뒤를 이은 새로운 CEO 로버트 A. 아이거.
미국 내 애니메이터들의 지대한 관심을 받고 있는 디즈니사의 다음 행보는 어떻게 될 것인가?!


  월트 디즈니 이사회는 현 CEO 마이클 아이즈너의 '오른팔' 로버트 A. 아이거를 신임 CEO로 추대하는 결의안을 3월 중순에 통과시켰다. 월트 디즈니 인터내셔널 사장과 이사회 일원으로서 월트 디즈니사와 ABC사의 대규모 합병을 지휘해 온 아이거는 그동안 디즈니사의 강력한 차기 CEO 후보로 거론되어 왔다. 아이즈너의 후계자가 누가 될 것인가, 또 누가 되어야만 하는가에 대해 수개월간 추측이 나돌았던 터라 아이거의 CEO 선출 소식은 미국 엔터테인먼트계 전체에 충격을 던져 주었다.
  기억하시겠지만, 월트 디즈니의 조카 로이 E. 디즈니는 아이즈너를 CEO직에서 몰아내기 위한 열띤 선전 활동을 펼쳤으며 기업 운영 방식의 대대적인 구조 조정을 요구한 바 있다. 로이를 비롯한 SaveDisney.com의 파트너들은 '아이즈너를 몰아내기까지 3년이 걸렸지만, 마이클 아이즈너를 월트 디즈니사 CEO직에서 물러나게 하려는 우리의 노력은 마침내 성공을 거뒀다. 주주들에게는 반응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 디즈니 이사회조차 우리의 선전 활동 이후 행동에 착수해 작년에 45%에 달하는 마이클 아이즈너 불신임 투표를 이끌어냈다'와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지난해 후반기에는 이사회에 디즈니 가족을 위한 상임 이사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는 제안이 있었지만, 로이는 "이사 선출은 근본적으로 각 후보자의 재능과 강점에 대한 평가를 기준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 일부에서는 로이 E. 디즈니의 이러한 발언을 '여우의 신포도'로 해석했지만 디즈니 주식이 계속 하락세라는 수치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아이거를 놓고 그의 정신적 지주인 아이즈너의 경영 방식과 유사하게 이어나갈 가능성이 높은 아이즈너의 판박이에 불과하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것이 과연 사실일지 여부는 물론 지켜봐야 알 일이다.
  그렇다면 미국 애니메이터들이 왜 디즈니사에서 일어나는 일에 이처럼 관심이 많은가? 디즈니사 이외에도 애니메이션 업체는 많다. 현재 애니메이션산업이 다시 호황을 누리고 있으며 픽사, 드림웍스, 니켈러디언, 카툰 네트워크, 워너 브라더스 등이 모두 새로운 인재들에게 문을 열고 있는 듯하다. 과연 우리(애니메이터)들은 어째서 자신들의 이해 관계가 얽힌 것처럼, 관심 있게 디즈니의 드라마를 지켜보고 있는 것일까?
  사실 좀 괴상한 방식으로 우리(애니메이터)들의 이해 관계가 있긴 하다. 어느 애니메이션 업체에서 근무하든 간에 애니메이터라면 '디즈니'라는 이름과 그 이름을 내건 회사에 대한 존경심이 있기 때문이다. 보잘것없는 한 생쥐의 작지만 강한 어깨 위에 구축된 이 세계적인 기업은 애니메이션이 얼마나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는지 증명했다. 세계의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미국은 아주 젊은 국가이며, 월트 디즈니가 좋든 나쁘든 미국의 공동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주장에 코웃음을 치고 지나치게 상업화한 거대 기업 디즈니사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초기의 월트 디즈니는 미국만의 다양한 인종의 용광로 상태'를 받아들이는 한편 전세계에서 찾아볼 수 있는 아름다움을 찾는 데 중점을 두었다. 디즈니랜드 테마 파크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놀이기구 중 하나인 '스몰 월드'에서는 어린 아이의 눈을 통해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보이는지 알 수 있다. 다양성을 찬양하는 한편 이 지구상에서 우리는 원래 형제 자매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냉소주의가 지배하는 지금, 이러한 지구촌 가족이라는 개념은 다소 식상한 감이 없지 않지만, 다른 국가들이 미국을 오만한 인종 차별 국가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았던 그 당시에는 혁명에 가까운 사고의 변화였다. 이는 단 한 명의 애니메이터가 품었던 야망으로부터 시작된 간단한 교훈이자 이상이다. 디즈니가 그의 이상을 통해 세계를 변화시켰다는 데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그것이 바로 미국 애니메이터들이 월트 디즈니가 세운 회사에 그토록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여러 이유 중 하나이다. 때문에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는 마법의 매체인 애니메이션에 참여하고 싶어서 애니메이션계에 뛰어든 애니메이터들이 많다.
  디즈니사의 창립자가 사망한 이후 디즈니의 기업 지도자들은 점점 더 업계 주도의 욕망에 따라 좌우되고 있는 듯하다. 디즈니사가 업계 전체를 이끌어 온 전례가 많았던 것을 감안할 때, 우리 애니메이터들은 자신들이 생명력 없고 차가운 '제품'을 만들어내는 조립 라인 공장 근로자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하게 된다. 일부에서는 월트 디즈니가 대변했던 이상을 기반으로 창립되어, 현재까지 운영되는 픽사가 '제2의 디즈니'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픽사가 미디어 세계에서 주요 업체로 빠르게 부상하고 있음은 의심할 바 없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애니메이션 회사에 불과하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월트 디즈니는 테마 파크와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는 모험 사업 등을 비롯한 여러 가지 형태의 미디어로 회사를 확장시켰다. 월트 디즈니가 남긴 업적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픽사처럼 단지 훌륭한 애니메이션을 만든다고 해서 '제2의 디즈니'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이거의 능력과 이력을 살펴보면 기업의 수익 창출 방법을 잘 아는 사람이라는 데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능력 있는, 심지어 위대한 CEO가 매직 킹덤(디즈니월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테마 파크 중 하나)을 건설한 것은 아니다. 훌륭한 사업가의 두뇌뿐만 아니라 예술적 감각이 결합되어 이뤄진 것이다. 이러한 능력을 보유한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인데, 이런 사람들을 적절히 표현할 수 있는 말은 바로 '이상가' 라는 단어 하나뿐이다. 최근 디즈니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제2의 디즈니'가 나타날 수 있는 기회임에 틀림없다. 아이거일 수도 있고 픽사의 스티브 잡스일 수도 있고, 다른 대형 애니메이션 업체의 그 누구일 수도 있다. 분명한 점은 누가 제2의 디즈니가 되든 그 역시 이상가라는 것이다.
제2의 디즈니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돈벌이에 능통한 머리나 도덕적 우월성에 대한 감각 이상의 것을 갖춰야 할 것이다. 앞길을 인도하는 이상가가 없다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소경들을 인도하는 또 다른 소경의 무리뿐이다.

[뉴타입 2005년 5월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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